2000년대 등장한 미래파 시들은 ‘소통 불가’로 불릴 만큼 난해하다. 서정의 전복(顚覆), 언어 실험을 추구하는 이들의 시를 읽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
2005년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로 등단한 저자는 미래파의 대표 주자. 하지만 그가 이번에 펴낸 세 번째 시집을 펴 찬찬히 읽어 내려가 보니 술술 읽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게다가 군데군데 가슴 뭉클한 감성적 시어도 배어 있다. 그렇다. 황병승은 변했다.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다/작년 이맘때는 실연을 했는데/비 내리는 우체국 계단에서/사랑스런 내 강아지 짜부가/위로해주었지/‘괜찮아 울지 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시 ‘가려워진 등짝’에서)
놀라운 것은 시인의 서정성이다. 그의 시를 평가절하하는 선배 서정 시인들의 비판이 무색할 만큼 그의 시는 충분히 촉촉하고 아름답다. 추억, 그리움, 회한, 애틋함이 절절히 스며든, 지나간 젊은 날들에 대한 생의 반추가 리듬감 있는 시어들에 담겨 흐르듯 연주된다. 또한 다채로운 화자의 변주가 담긴 시들을 읽다 보면 소설을 읽는 듯,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롭다. 특히 시 ‘티셔츠 속의 젖을 쓰다듬다가’ ‘쥐가 있는 피크닉 자리’가 그러하다. ‘쥐가…’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도무지 멋쩍은 월요일,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들을 망쳤으면 좋겠다 다른 어떤 무늬의 옷도 자연과 어울리지 않아 우리에게 ‘내일’은 얼마나 남아 있는 걸까 언제나 단 하루, 떨어지는 꽃잎//-사랑해……라고 말해줄까?//-힘내.’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황병승의 시에는 여전히 ‘가시’가 많다. 해독 불가, 혹은 독자들에게 해독을 맡긴 비밀스럽고 난해한 시어들이다. 하지만 시집은 가시에 찔리면서도 흠모할 만한 매력적인 꽃이다.
시집 제목은 ‘육체쇼와 전집’. 전집의 의미가 아리송했다. 시인에게 물었더니 “전집(全集)이에요. 제가 쓴 글과 시간, 생활을 묶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내친김에 ‘그럼 육체쇼는 뭔가요’라고 물었더니 “의미를 한정짓고 싶지 않다”며 답을 피했다. 시집의 해석은 오로지 독자 몫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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