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시에서 16일 개관한 한솔뮤지엄에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건축과 예술을 만날 수 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파주석으로 외벽을 쌓은 건물과 꽃, 물, 돌의 정원이 어우러진 공간을 설계했다. 한솔뮤지엄 제공
동서남북 사방이 활짝 트인 산꼭대기에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72)가 설계한 야트막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원으로 이어진 건물은 막힌 듯 열려 있고 자신을 감추면서 다시 드러낸다. 스스로 뽐내기보다 자연 앞에 몸을 낮춘 공간이 편안하고 정겹다. 이어 등장한 작은 건물은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70)이 선보인 빛의 마술을 체험하는 상설전시관. 꽃 보랴 작품 보랴 2.3km에 이르는 동선을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을 훌쩍 넘긴다.
강원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에 16일 개관한 한솔뮤지엄(관장 오광수)은 자연 건축 예술이 하나로 통하는 곳이다. 8년의 준비기간을 들여 한솔그룹이 오크밸리 내 대지 면적 7만1172m², 건축 면적 5445m² 규모로 조성한 전원형 미술관으로 서울 남산과 비슷한 해발 250m 산 정상에 들어섰다.
안도와 터렐이 이름값에 걸맞은 수작을 선보였지만 맑은 공기와 숲 등 빼어난 자연환경이 뮤지엄을 돋보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기 불편한 입지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에 이만한 품격의 미술관이 생겼다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7000∼1만2000원(터렐관 별도 1만∼1만5000원). 033-730-9000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의 소장품을 선보인 청조갤러리.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원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자연을 품다-안도 다다오의 건축
웰컴센터와 본관, 꽃 물 돌을 주제로 한 정원에 여유로운 오솔길로 구성된 뮤지엄의 건축 테마는 ‘소통을 위한 단절’로 요약된다. 전체 구조를 한꺼번에 노출하기보다 숨겨 놓은 공간을 하나씩 풀어내는 설계에서 ‘발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느림과 쉼표의 미학으로 완성된 공간이다.
돌로 마감한 외벽은 성벽을 연상시킨다. 그 벽을 돌아서면 패랭이꽃을 심어 놓은 드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다시 잔잔한 물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돌을 활용해 박스 안에 또 다른 박스가 들어가는 구조로 지은 건물은 주변 지형과 경관에 대들지 않고 자연 속에 스며든다. 내부 공간도 쉽게 비밀을 공개하지 않는다. 꽉 막힌 듯 보이는 복도 끝까지 걸어가야 다른 전시장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실내에서 잠시 야외 중정으로 빠져나왔다 다시 실내로 연결된다.
신라고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돌의 정원은 생뚱맞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포근한 아날로그 감성이 숨쉬는 산상 미술관으로 빛을 발한다. 일본 나오시마(直島) 지추(地中)미술관에서 표현된 안도 건축의 특징을 잘 살린 건물로 꼽을 만하다.
빛의 마술을 체험하는 제임스 터렐관의 ‘겐스필드’. 구름 위에 뜬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솔뮤지엄 제공○ 빛을 품다-제임스 터렐관
‘진실의 순간’을 주제로 한 개관 기념전은 알찬 구성, 깔끔한 연출이 돋보였다. ‘페이퍼 갤러리’에선 종이의 역사, 국보 277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36)와 선인들의 종이 공예품을 볼 수 있다. 이인희 그룹 고문의 호에서 따온 ‘청조갤러리’에선 박수근 이중섭 이쾌대 등 근대 회화를 중심으로 판화 드로잉이 즐비했다.
또 다른 핵심 프로젝트 제임스 터렐관은 빛을 지각하는 방식과 효과를 예술로 끌어들인 작품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6월 미국 구겐하임에서 회고전을 여는 작가의 4개 작품을 한데 모은 세계 최초 퍼블릭 전시관이다. 비행기 안에서 하늘을 보는 듯한 ‘호라이즌’, 빛의 산란을 이용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개 속이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겐스필드’ ‘웨지워크’를 선보였다. 일출과 일몰 시간에 감상하는 ‘스카이스페이스’는 하늘에 거대한 필터를 낀 듯 실제 하늘과 인공의 빛이 만나면서 오묘한 재주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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