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건조한 의식의 세계와 몽환적 무의식의 세계가 하나로 연결됐다는 발상 때문이다.
의식의 세계는 주인공인 열일곱 살 같은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이호협)와 예순이 넘었지만 여섯 살 지능을 지닌 노인 나카타(이남희)가 살다가 떠나는 차가운 도시 도쿄로 상징된다. 무의식의 세계는 서로를 모르는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하는 도쿄 서남부 시코쿠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다카마쓰에서 신비로운 속살을 드러낸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는 기발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소설(2002년)을 극화한 이 작품에도 그런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동명의 위스키 브랜드 상표에 그려진 조니 워커(장용철)와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의 창업자를 캐릭터화한 커넬 샌더스(이인철), 그리고 젊은 슈퍼마리오를 연상시키는 호시노(윤정섭)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귀엽고 독창적인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과 달리 이들은 유명 캐릭터의 변형인 데다 엽기적이다. ‘젠틀맨’의 상징이라 할 조니 워커는 고양이를 잡아 심장을 빼먹고 머리를 잘라서 수집하는 변태적 취미를 지닌 조각가로 등장한다. 후덕함의 상징인 커넬 샌더스는 뒷골목 성매매를 주선하는 호객꾼으로 나온다. 나카타를 돕는 트럭운전사 호시노는 작업복 차림에 늘 모자를 쓰고 다니며 힘든 과제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슈퍼마리오를 빼닮았지만 여색에 약하다.
그럼 18금의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좀더 그로테스크하다는 점에서 일본화한 팀 버턴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러야 할까?
무라카미의 동명소설을 미국 극작가 프랭크 갈라티가 2008년 희곡으로 옮겨 쓴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무라카미가 이 작품을 집필할 때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KFC 치킨을 안주 삼아 조니 워커 위스키를 마시면서 틈틈이 슈퍼마리오 게임에 열중한 게 아닐까. 그만큼 원작이 지닌 유머감각이 한껏 살아있다는 소리다. 상징성이 풍부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 디자인과 캐릭터 연기에 충실한 배우들이 그 매력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상·하권 합쳐 800쪽이 넘는 소설을 15분의 중간 휴식시간 포함해 3시간 안에 담아내려다 보니 논리적 뼈대와 자극적 에피소드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글 번역을 맡았다가 연출가로 데뷔하게 된 김미혜 한양대 교수도 “원작의 동양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많이 빠진 서양적이고 무미건조한 대본”이라고 말했다.
그 골격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 누이와 관계할 것이란 저주를 받은 소년 다무라 카프카와 열 살 때 충격으로 지적장애인이 됐지만 고양이와 대화가 가능한 노인 나카타가 겪는 모험을 병치한 것이다. 원작소설은 독립된 것 같은 둘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세상만물은 메타포(은유)의 형식으로 연결돼 있으며 그걸 상상해낼 수 없는 인간은 캐릭터 인형처럼 ‘텅 빈 존재’에 불과하다는 주제의식을 그려낸다.
서양연극에 정통한 각색자 갈라티는 오이디푸스의 현대적 재림이라 할 다무라의 이야기에 치중하면서 그 영혼의 짝패라 할 나카타의 이야기는 서브 스토리로 취급한다. 결정적 패착이다. 나카타의 이야기가 소홀해지면서 다무라가 아비살해의 저주는 피했지만 어미(사에키·강지원) 누이(사쿠라·장지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처럼 오해하기 딱 좋게 끝난다.
다무라에 대한 저주는 결코 현실에서 이뤄지는 저주가 아니다. 메타포의 형식으로 매개되는 저주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주는 더이상 저주가 아니다. 삶의 비의(秘意)가 담긴 수수께끼일 뿐. 그런 맥락에서 원작소설을 읽고 난 뒤 연극을 보면서 이를 재음미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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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합작 신생 공연기획사인 PAC코리아의 첫 제작극. 6월 16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3만∼6만 원. 02-76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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