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이승열 “제 모던록은 이방인들과의 대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 4번째 앨범 ‘V’에 베트남악기 단버우 도입

싱어송라이터 이승열은 신작 ‘V’의 속지에 이렇게 썼다. ‘즐겁거나, 혼란스럽거나, 혹은, 무감각해지시길 바라며.-2013년 봄. 이승열.’ 플럭서스뮤직 제공
싱어송라이터 이승열은 신작 ‘V’의 속지에 이렇게 썼다. ‘즐겁거나, 혼란스럽거나, 혹은, 무감각해지시길 바라며.-2013년 봄. 이승열.’ 플럭서스뮤직 제공
우린 모두 이방인인지 몰라요. 제 음악은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겠죠.”

싱어송라이터 이승열(43). 그는 국내 모던 록의 대변인이다. 1990년대 중반 록 밴드 ‘유앤미블루’ 멤버로 활약한 뒤 3장의 솔로 정규 앨범을 내면서 가볍고 상업적인 것이 아닌, 진중하고 깊이 있는 모던 록의 대표 주자가 됐다. 이 중 두 장의 음반은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

23일 그가 내놓는 네 번째 정규작 ‘V’는 모던 록의 가장 낯선 영역을 향한 모험이다. 록 밴드 편성에 한 줄짜리 베트남 전통 현악기 ‘단버우’를 도입했다. 신비로운 동양적 선율을 앞세운 길고 몽환적인, 새로운 록 형식에의 도전이다.

“지난해 초 즐겨 듣던 클래식 FM에서 국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낯선 소리를 들었어요. 그 악기의 솔로 연주에 큰 충격을 받았죠.”

단버우였다. 이국적인 음색과 폭넓은 표현력을 록과 결합하면 독특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수소문해 찾아낸 연주자는 한양대 박사과정에 유학 중인 베트남인 레화이프엉. “프엉은 ‘단버우는 베트남 전통음악에만 쓰일 뿐 대중음악과 섞인 적이 없다’면서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이승열은 프엉을 설득해 그간 망설여온 실험을 감행키로 했다. 단버우를 기타 앰프에 연결해 록의 문법에 흡수했다. “개성과 다이내믹이 굉장한 악기예요. 공격적일 때와 흐느적거릴 때의 낙차가 크죠.”

프엉의 즉흥연주는 음악에 독특한 색채를 더했다. 이승열은 내친김에 한국에서 활동 중인 모로코인 뮤지션 오마르 스비타르도 영입했다. 이슬람풍의 즉흥 가창과 프랑스어 내레이션이 추가됐다. 신작 ‘V’는 첫 곡 ‘미노토어’부터 이방(異邦)의 색채를 풍긴다.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곡에서 스비타르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구절을 프랑스어로 낭독한다. 신비로운 선율과 ‘어쩜 그리 추잡한 인생은 잘도 간다’는 가창이 섞여든다. 앨범에 수록된 10곡 중 절반은 6∼10분에 이르는 긴 곡. 단버우와 기타로 연주되는 아랍과 인도풍의 선율이 모던 록의 몽환적인 공간감과 뒤섞여 머나먼 이국의 광야로 듣는 이를 이끈다. 서울 서교동의 공연장 벨로주와 논현동의 소속사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방식으로 녹음해 현장감을 살렸다.

미국 이민 1.5세대인 이승열,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베트남과 모로코 사람, 이국적인 선율…. 이 음악과 음악인들은 방랑의 천형을 업고 낯선 땅을 소요하는 이들의 이미지로 수렴한다. 그는 “우린 모두 이방인일지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살지만 혼돈 속에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의 정신이 모여 이 음악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죠.”

이승열은 지난해부터 EBS FM ‘이승열의 영미문학관’(월∼토 오후 9시)과 교통방송의 영어방송인 TBS eFM ‘인디 애프터눈’(일 오후 4시)도 진행한다. “방송 덕에 해외 문학과 인디 음악을 더 많이 접하게 됐어요. 음악을 풍성하게 하는 좋은 자극이 되죠.”

그는 다음 달 22일 주영 한국문화원 주관으로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케이뮤직 페스티벌’ 무대에서 유럽 관객을 만난다. 7월 12, 1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선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연다.

그의 음악, 여전히 ‘모던 록’일까. “글쎄요. 음악이라기보다 주술? 그것(장르 규정)만은 제게 넘기지 마세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지도 묻지 마세요. 저도 모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싱어송라이터#이승열#단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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