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아름다운 날과 같이, 미풍의 입맞춤, 그리고 햇살의 애무가 깃든 날. 그러나 그 또한 지평선 너머 사라져 버리나니….’
절명창(絶命唱) 또는 사세가(辭世歌)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뜨면서 부르는 노래를 뜻합니다. 보통 말하는 ‘백조의 노래’와는 다릅니다. 요동치는 시대의 한가운데 선 의기 넘치는 우국지사나 열사, 또는 사상가가 원통하게 세상을 뜨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앞에 적은 글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1896년)에 나오는 주인공 셰니에의 아리아 ‘오월의 아름다운 날처럼’ 가사입니다. 이 노래 역시 우리 ‘콘셉트’로는 전형적인 절명창 또는 사세가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는 애끊는 충절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극히 탐미적인, 감각적인 지상의 아름다움을 예찬함으로써 오히려 듣는 이를 울컥하게 만들고 맙니다.
비슷한 맥락의 노래로 푸치니 ‘토스카’(1900년)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카바라도시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들 수 있습니다.
두 오페라의 주인공 모두 시대의 격동 속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대단한 운동가는 아니었습니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모델인 앙드레 셰니에는 프랑스대혁명 당시 진보적 사상을 전파한 시인이었으나 급진주의자들의 공포정치에 희생됐습니다. ‘토스카’는 나폴레옹과 나폴리왕국이 로마를 두고 공방을 벌이던 19세기 초가 배경입니다. 이 오페라의 남주인공인 카바라도시도 반동정치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고 있으나 단지 도망자인 친구를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달콤한 대기의 향내’도 저버린 채 목숨을 잃습니다.
6월 20∼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글로리아오페라단이 푸치니 ‘토스카’를 공연합니다. 날짜를 절묘하게 정한 것 같습니다. ‘토스카’의 역사적 배경을 원작자 빅토리앵 사르두는 ‘1800년 6월 18일 오후에서 19일 새벽’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에 나오듯 대지에서 온갖 향기가 풍기는 계절입니다. 이런 계절의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을 배경으로 무대 위에서는 고문과 성추행, 살인, 사형과 자살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배경은 가사에 나와 있듯 5월입니다. 영화 ‘필라델피아’에 나오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가 이 오페라 속의 소프라노 아리아죠. 우리나라에서도 5월과 6월은 피 끓는 격동의 계절이었습니다. blog.daum.net/classicgam/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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