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존나 쩔어요!” “네 말의 어원은 이렇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5일 03시 00분


◇B끕 언어/권희린 지음·300쪽·1만5000원·네시간

서울 강북의 한 남자 고등학교 국어시간. 평소 화장기 없이 털털한 옷차림이었던 여자 교사가 분홍색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교실에 들어오자 아이들이 술렁댄다. 한 학생이 “선생님, 오늘 쩔어요!”라고 말하자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하지만 정작 교사는 애매하다. 예쁘다는 뜻일까, 아님 짜증난다는 뜻일까. ‘쩐다’는 말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학생들이 흔히 쓰는 비속어, 은어들. 어원과 정확한 뜻조차 애매한 이들 단어에 대해 5년차 고교 국어교사인 저자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정리해갔다. 더 신기한 것은 지난해 2학기에 당당히 국어 시간에 비속어 수업을 5분씩 진행한 것이다.

반응은 어땠을까. “선생님 입에서 비속어가 나오니 학생들이 ‘왜 그런 말을 써요’라며 오히려 신기해했죠. ‘너희들이 자주 쓰는 말들의 정확한 뜻을 알려주려고 하는 거야. 뜻은 알고 써야 하지 않겠니’라고 설명했죠.”

고충도 있었다. 사실 비속어라는 게 욕이 대부분이고 특히 성적인 표현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아서 어원을 설명할 때마다 부끄러웠다는 것. 아이들이 맞장구치고 실실거리는 모습을 보니 힘도 빠졌다. 하지만 적나라한 어원을 몇 번 설명하자 예전처럼 수업 중간에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비속어를 말하는 양상이 줄었다고. 학생들에게 무조건 “쓰지 마” “안 돼”라고 말하기보다는 비속어의 뜻을 설명해주고 자연스럽게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한 것이다.

권희린 씨
권희린 씨
책은 ‘꽐라’ ‘존나’ ‘쩐다’ ‘쌩까다’ ‘간지나다’ ‘깝치다’ 등 청소년들이 자주 쓰는 단어 70여 개의 뜻을 풀이했고, 그와 관련해 저자가 겪은 에피소드들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언어 습관과 교육 현장에 대한 생생함이 느껴져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비속어는 ‘존나’다. ‘남성의 성기가 튀어나올 정도’라는 어원을 갖고 있으며 현재는 아이들에게 ‘아주’ ‘매우’와 동의어가 돼버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 “선생님 애들이 존나 떠들어요” “선생님 칠판이 존나 안 보여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정작 황당한 것은 저자의 다음 말이다. “보통 이런 말을 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수업 시간에 잘 참여하는 모범생들이다. 보통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수업 시간에 뭘 하는지 관심도 없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자신도 많이 배웠고, 스스로 반성도 했다는 저자. 이를테면 수업시간에 분위기를 깨고 장난치고 웃는 학생에게 홧김에 “어디서 실실 쪼개고 있어?”라고 말했다는 것. “‘쪼개다’라는 말은 주로 강자가 약자에게 위협을 가할 때 많이 써온 단어다. … 강하게 말해야 (학생이) ‘꼬리’를 내린다고 정당한 변명을 해보고 싶지만 나는 그 학생에게 강자이고 싶었던 거였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비속어 사용을 조심하게 됐지만 저자는 “비속어 사용을 금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우리 대화를 말랑말랑하고 재미나게 만들어준다는 것. 국어교사로서 소신 발언인 셈인데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책은 비속어를 ‘B끕 언어’라 칭하며,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B급 정서가 세계인을 움직인다고도 말한다. “B급은 A급보다 솔직하고 당당하다”는 논리도 편다. 하지만 싸이의 B급 뮤직비디오는 ‘장난’이지만, B급 언어(비속어)는 ‘언어폭력’에 가깝지 않을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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