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낚였다. 원래 현대미술에 하등 관심 없다. 한참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헷갈리는 게 태반이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고전미술 옹호론자’로 살아왔다. 쥐뿔도 모르긴 하지만, 다비드상은 분간이라도 하니까.
하지만 어쩌다 마주친 ‘가장 비싼’이란 단어에 혹해 버렸다. 속물들은 그렇다. 샤넬 백도 가격표에 한 번 더 쳐다본다. 할리우드 영화도 얼마 투자했다는 소리에 귀가 쫑긋 선다. 다행히 장미셸 바스키아나 제프 쿤스, 애니시 카푸어라는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다. 자 그럼, 그들은 얼마나 그리고 왜 비싼지 한번 알아보자.
근데 이 책, 정말 낚인 게 맞다. 진짜 궁금한 것을 안 가르쳐 준다. 제일 비싼 것은 얼마인지, 도대체 그치들은 얼마나 돈을 긁어모았는지가 나오질 않는다. 자꾸 인터넷을 찾아보게 만든다. 흠…. 스코틀랜드 화가 피터 도이그의 ‘하얀 카누’란 그림은 570만 파운드(약 96억 원)에 팔렸구먼. 쩝, 로또를 서너 번쯤 때려 맞아야 할 액수다.
하지만 다행이다. 나머지 ‘왜 비싼가’라는 궁금증에 대해선 꽤 많은 힌트를 제공한다. 프랑스 파리 고등사회과학대학원에서 철학·인문학 박사를 따고 현재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2010년 기준으로 세상에서 제일 비싼 작가 10명을 설득력 있게 카테고리로 묶어서 정리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예술가들이 각광받는 이유는 그들의 작품에 적확한 시대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사이버 세상의 침공으로 현실 속 자아에 대한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져 있다. 국내에서 성행하는 학력 위조나 키 높이 깔창, 성형 열풍도 이런 범주에서 해석된다. 자신을 우둔한 당나귀로 묘사했던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 피부색에 대한 고민을 평생 지고 살았던 ‘미국의 검은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대변했기에 공명(共鳴)이 컸다.
인도 출신 영국 작가인 카푸어나 중국의 천이페이(陳逸飛)와 쩡판즈(曾梵志)는 현대미술에서도 ‘친디아(Chindia·중국과 인도의 합성어)’ 바람이 불고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도 한몫했다. 미국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리처드 프린스는 복사와 붙여넣기가 무한 반복되는 컴퓨터의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반면 도이그는 ‘반(反)디지털’의 기치 아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미술계를 매료시켰다.
게다가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자신과 작품을 브랜드화해서 어떻게 몸값을 올리는지를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미언 허스트(48)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자 프랭크 던피라는 매니저와 계약을 체결했다. 던피는 쇼 비즈니스 분야에서 배우들을 관리하며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는 관례적으로 경매에 작품을 내놓을 때 화랑을 거치는 방식을 건너뜀으로써 작가에게 훨씬 많은 돈을 안겼다. 갤러리 쪽과도 예술가가 좀 더 나은 조건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협상했다. 쿤스나 카푸어 등도 이런 매니저를 고용하고 있어 요즘 추세라고 한다.
사뭇 진지하게 작가들을 통찰한 책이지만 틈틈이 재밌는 뒷얘기도 만날 수 있다. 2011년 독일작가 마르틴 키펜베르거(1953∼1997)의 작품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는 바닥에 그려 놓은 그림을 미술관 환경미화원이 얼룩인 줄 알고 깨끗이 지워 버렸다. 110만 달러(약 12억 원)짜리 예술을 청소해 버린 그 심미안이란…. 2001년 허스트의 설치작품도 관리인이 지저분한 오물이라 판단해 몽땅 치워버렸다. 하긴, 현대미술이 종종 쓰레기 수준이란 소리도 듣지 않는가.
약간 씁쓸한 대목도 있다. 책 속 10대 작가엔 중국 예술가가 2명이나 포함돼 있다. 그런데 1년 뒤인 2011년을 기준으로 하면 다섯 명으로 늘어난다. 일본 미술가도 1명 눈에 띈다. 물론 중국시장의 거품이라느니, 가격은 작품성과 다르다느니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다. 높은 평가를 받는 한국 작가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왠지 약이 오른다. 어디 ‘세계에서 돈 주고도 못 사는 비싼 한국작가 10’이라는 책은 없을까. 또 인터넷 뒤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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