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마거릿 대처(1925∼2013)가 사망한 이후 영국 미디어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이 여성을 집중적으로 추억했다. 미국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이 대처 총리 역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2011년)’의 장면들이 뉴스에서 연일 소개됐다. 그의 일생과 정치 여정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도 쏟아졌다.
출판계도 그에 대한 책들을 다시 내놓으며 분주히 움직였다. 대처의 저서와 전기들이 앞 다퉈 재출간됐다. 그 가운데 단연 수위를 차지한 책은 대처가 유일하게 인정한 전기였다고 알려진, 찰스 무어 작가가 쓴 ‘마거릿 대처’였다. 4월 23일 출간된 이 책은 영국의 거의 모든 일간지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이 덕분인지 현재 영국 아마존의 정치 과학 분야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어는 유일하게 공인받은 전기작가로서 대처의 사생활에 대한 자료는 물론이고 그가 총리로 재직했던 당시 정부 기밀문서에 대한 열람도 허락받았다. 영국 역사상 최장 기간 총리를 지낸 대처의 일생은 한 권으로 펴내기에는 너무 방대했던 모양이다. 책 한 권이 890여 쪽인데도 두 권으로 출간됐다.
인디펜던트의 제인 메릭 기자는 “무어의 글 솜씨는 우아하고 생생하다. 종종 지나치게 길고 자세한 묘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대처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줄 만큼 자료가 풍부하고 상세하다. 이런 깊이 있는 취재가 모든 지루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재미를 주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첫 권의 상당 부분은 정치가가 되기 이전 대처의 삶에 할애됐다. 무어는 대처와 언니 뮤리엘 사이에 주고받은 150여 통의 비밀편지들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대처가 남편 데니스를 만나기 전 다른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이 남자친구가 나중에 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대처와 데니스의 결혼생활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폭로했다.
데니스는 조용한 성격으로 평생 대처를 다정하게 도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론 대처의 정치에 대한 집착 탓에 부부는 1960년대에 이혼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대처는 강한 논리력과 설득력을 지녔지만 타인의 감정엔 다소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혹자는 그녀의 공감하는 능력 부족이 그의 퇴진을 초래했던 내각 갈등의 원인으로 꼽을 정도였다. 둘째 권에서 무어는 포클랜드전쟁,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의 대립, 공공기관 사유화 논란 등 대처의 정치 여정을 촘촘히 그려 나간다.
데일리메일의 크레이그 브라운 기자는 이 작품을 가리켜 “성실함의 승리”라고 말했다. 이제껏 출간된 정치인 전기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찬사도 덧붙였다. 실제로 이 책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몇몇 사실을 들려주는 재미가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은 이미 기정사실화됐던 역사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대처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바꿀 만큼 신선하거나 파격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대처는 영국 내에서조차 호불호(好不好)가 뚜렷이 갈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총리라는 기록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런 인물의 일생을 엿본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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