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무루 상, 나이 마흔셋에 日 아이돌로 우뚝 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0일 03시 00분


■ 6월까지 성남아트센터서 뮤지컬 ‘잭 더 리퍼’ 재공연 김법래

‘잭 더 리퍼’의 타이틀 롤인 살인마 잭 역을 맡으면서 비중 있는 조연에서 묵직한 주연배우로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뮤지컬 배우 김법래. 굵고 묵직한 목소리와 마초 같은 외모를 지닌 그의 취미는 의외로 요리다. 요즘엔 베이컨 대신에 대패삼겹살을 바짝 구워서 부수어 넣은 압구정 스타일 샐러드에 푹 빠졌단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잭 더 리퍼’의 타이틀 롤인 살인마 잭 역을 맡으면서 비중 있는 조연에서 묵직한 주연배우로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뮤지컬 배우 김법래. 굵고 묵직한 목소리와 마초 같은 외모를 지닌 그의 취미는 의외로 요리다. 요즘엔 베이컨 대신에 대패삼겹살을 바짝 구워서 부수어 넣은 압구정 스타일 샐러드에 푹 빠졌단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보무루 상(법래 상), 보무루 상! 꺄아악!”

지난해 10월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일본 공연이 끝난 도쿄 아오야마 극장 입구. 공연을 관람한 일본 관객 200여 명이 주인공 잭을 연기한 배우 김법래가 탄 버스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창밖으로 손을 흔들자 ‘법래 상’의 일본식 발음인 ‘보무루 상’을 떠나갈 듯 외쳤다.

한국 뮤지컬 배우 중 트위터 팔로어 수가 김준수와 정성화의 뒤를 잇는 3위(2만3473명), 나이 마흔셋인데도 일본 뮤지컬계에선 ‘아이돌’로 불리는 사람. 게다가 한국 무대에선 주로 비중 있는 조역만 맡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9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재공연에 들어간 ‘잭 더 리퍼’는 1888년 영국 런던에서 매춘부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한 체코 뮤지컬이다. 2009년 국내 초연된 뒤 한국식으로 손을 본 공연이 지난해 일본에 진출하며 역대 일본 진출 한국뮤지컬 중 최대 흥행기록을 세웠다. 2009∼2011년 사진기자 먼로 역을 맡았다가 일본 공연 직전부터 잭을 맡기 시작한 김법래는 일본 공연 이후 스타급 연기자로 거듭났다.

22일 오후 서울 성신여대 미아운정그린캠퍼스에서 만났다. 그가 특유의 저음으로 껄껄 웃자 주변 여대생들이 깜짝 놀라 한 번씩 쳐다봤다.

“트위터요? 일본 팬이 압도적으로 훨씬 많아요. 번역기가 있어서 다행이죠. 일본 팬이 한글로 써주신 손편지도 2000통이 넘지요. 일본 공연은 지난해 처음 해봤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제가 강렬했었나 봅니다. 하하.”

살인마 잭이라 하면 2010년부터 그 역을 맡아온 배우 신성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김법래가 연기하는 잭은 묵직하고 음침하다. 뮤지컬 배우와 일반인을 통틀어 이 정도 저음의 목소리는 드물다. 너무 낮아서 귀가 윙윙거릴 정도다.

“성악을 전공했는데 베이스이었습니다. 뮤지컬 제작자들은 ‘저음의 목소리 때문에 네가 다른 배우 목소리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주인공을 꿰차기도 힘들었죠. 제가 연기하는 잭의 노래는 원래 곡보다 한 옥타브 낮아요. 높은 음을 내기 불편하다면 차라리 색다른 잭을 노래하겠다고 제가 제안한 겁니다. 일본 뮤지컬 배우 중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없어서 저보고 ‘아이돌’이라 부르나 봅니다.”

김법래 버전의 잭에 대해선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 처음 잭을 연기했던 지난해 서울 공연에서 그는 가죽재킷에 가죽바지, 삭발 투혼을 발휘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대박이 터진 것이다.

“19년 뮤지컬 배우 생활을 통틀어 처음 욕먹어 봤습니다. 충격이었어요. 서울 공연 때 뒷골목 깡패 같은 잭이 무대에 나오니까 마니아 관객층의 거부감이 컸나 봐요. 제 목소리가 가뜩이나 낮아서 ‘흉측스럽고 무섭다’는 평이었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멋진 목소리의 마초 살인마라며 폭발적인 반응이라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목소리나 외관은 마초지만 알고 보면 가정적인 ‘집돌이’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아내와 아들에게 먹일 밥을 차립니다. 설거지도 제가 해요. 그릇도 제가 놓던 대로 하고 싶어서 아내가 도와준다고 하면 그렇게 싫더라고요.”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잭의 의상과 춤을 비롯한 전체적 이미지도 직접 바꾸며 칼을 갈았다. 턱시도와 장갑을 낀 ‘샤프한 잭’이다.

“(신)성우 형이 보라색 빛깔의 광기 어린 살인마라면 저는 차분하게, 차갑고 부드러운 잭을 연기할 겁니다. ‘(높은 톤으로) 꺌꺌꺌’이 아니라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으하하하’같이 말이죠. 한국 관객들에게서도 섹시하단 소리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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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까지 경기 성남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7월 16일∼9월 29일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 4만∼13만 원. 02-764-7857∼9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잭 더 리퍼#김법래#성남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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