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김인순 옮김/232쪽·1만2500원·필로소픽
어떻게 하면 우아하게 가난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책은 뻔하게 답한다.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실패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주제는 뻔하지만 책은 안 뻔하다.
저자는 유서 깊지만 쇠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자 구조조정에 희생당한 해직 언론인으로 자신만큼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주장한다.
황당한 주장만큼 톡톡 튀는 문체가 책장을 술술 넘어가게 한다. 쇤부르크 가문의 흥망사에서 출발해 배우 헬무트 베르거의 필모그래피, 헝가리의 역사를 넘나드는 저자의 지식도 방대하지만 그 빼곡한 디테일을 유압 낮추고 느긋하게 방류하는 서늘한 유머가 발군이다.
책은 부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일을 줄이고 외식과 자동차, 옷에 대한 환상을 던져버리라고 권한다. 각 챕터를 여는 격언에 윈스턴 처칠, 조지 버나드 쇼뿐 아니라 자신의 누나 글로리아까지 끌어들이면서 저자는 평범한 여유가 열에 들떠 추구하는 행복보다 소중하다고 주장한다. ‘옷을 건전하게 경멸하는 사람만이 우아하게 보일 수 있다’는 식이다.
데이미언 허스트, 헬무트 베르거와의 인터뷰 같은 언론인 시절 경험도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 저자가 본문 뒤에 붙인 ‘어휘 해설’ 챕터도 그냥 부록이 아니다. 관광객, 백화점, 헬스클럽, 필하모니에 대한 짧고 뼈 있는 정의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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