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레퀴엠’ 연주… 절묘한 균형, 깊은 울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4일 03시 00분


고음악 거장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헤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

미완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무대이기도 했다. 7년 만에 내한한 벨기에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헤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합창단인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무대(1, 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를 지켜보고 나서, 이처럼 모순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부의 모차르트 ‘주피터 교향곡’은 실망 또는 당혹감으로 다가왔다. 특히 첫 악장은 처음부터 화음의 균형이 덜 잡힌 채로 출발했고, 현악이 관악을 압도했으며, 다소 성급해 보이는 진행으로 일관했다. 2악장은 마치 거칠게 일렁이는 파도,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도 같았다. 3악장 개시부에서는 바이올린 파트가 흐트러진 앙상블을 들려주었고, 4악장의 푸가토도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

정력적인 면이 돋보였고 지휘자의 즉흥적인 제스처도 흥미로웠으나 전반적으로 무언가에 짓눌리고 쫓기는 듯한 인상을 남긴 연주였다. 그런데 앙코르로 재차 연주된 3악장에서는 감칠맛 나는 리듬과 한결 정돈된 아티큘레이션(음표에 뉘앙스를 부여하는 것)을 들려주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2부의 모차르트 ‘레퀴엠’은 실로 아름다운 연주였다. 첫 곡에서는 다소나마 1부의 분위기가 재연되는 듯도 했으나, 합창이 복잡한 대위성부를 처리하는 ‘키리에’로 접어들자 헤레베헤와 그의 동료들의 진가가 비로소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헤레베헤와 40여 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역량이 돋보였다. 정갈한 소릿결과 정제된 앙상블은 음반에서 듣던 그대로였다. 모든 합창부의 시작과 마무리가 어쩌면 그리도 자연스럽고 적절할 수 있을까. 특히 라크리모사(미완성으로 작곡된 레퀴엠에서 모차르트가 최후로 작곡한 부분·‘눈물과 한탄의 날’이란 뜻)를 닫는 ‘아멘’에서 그들이 들려준 비통함과 정결함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취한 울림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물론 그 모두를 가능하게 한 것은 헤레베헤의 노련한 손길과 명확한 비전이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유작을 풍부한 드라마로 채우면서 동시에 정연한 구성미로 이끌었다. 폭넓은 시야와 면밀한 심도를 겸비한 그의 해석은 과거의 음반에서보다 확실히 진보했다.

어쩌면 이번 공연의 ‘레퀴엠’은 1부의 ‘주피터 교향곡’까지를 아우른 것은 아니었을까. ‘죽음을 향한 여정’을 의식한 ‘인생극장’의 불안과 혼돈, 그것은 앙코르로 연주된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성체찬미가)에 이르러 비로소 정화되었다. 지금 필자의 뇌리에는 헤레베헤가 1부와 2부에서 공히 앙코르 연주 직전 유머러스한 말투로 객석에 던졌던 ‘여러분을 위해(For you)’가 메아리치고 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필리프 헤레베헤#레퀴엠#모차르트#샹젤리제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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