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개봉(지난달 16일)을 앞두고 영화계의 이목은 온통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 쏠렸다. 디캐프리오가 미국의 ‘국민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해 했다. 개츠비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의 주인공 톰만큼이나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문학 속 인물이다.
그러나 기자의 관심사는 개츠비의 여자였다. 그가 일생을 바쳐 사랑했던 그 여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데이지가 제대로 그려질까 궁금했다. 데이지 역에 배우 캐리 멀리건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원래 이 역할은 내털리 포트먼, 스칼릿 조핸슨, 키라 나이틀리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경쟁했다. 이들보다 경력이 일천한 멀리건의 캐스팅이 패착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멀리건은 이런 기우를 단방에 날려버렸다. 영화 속 데이지 캐릭터는 너무 소극적이고 밋밋하지만 그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현재화하기에 충분한 연기였다.
멀리건의 연기가 또 돋보인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한 ‘셰임’. 이 영화에서 그는 섹스중독자 설리번(마이클 패스벤더)의 여동생이자 밤무대 가수인 씨씨로 나온다.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한 패스벤더의 열연에 가려 묻혀 버릴 수 있는 역할이었지만 그는 놀랄 만한 연기를 했다.
그가 돋보이는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바에서 노래하는 장면. 오빠의 직장 상사를 혹하게 만드는 이 장면에서 그는 부정할 수 없는 팜파탈이다. 또 하나는 그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오빠에게 처절하게 말을 거는 장면이다. 겉으로는 화려함을 좇지만 의존적이고 나약한 캐릭터의 양면을 적확하게 그려냈다.
그는 썩 미인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배역을 담기에도 좋은 ‘말간’ 얼굴이다. 그는 ‘드라이브’(2011년)에서는 옆집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지고지순한 싱글맘으로, ‘언 에듀케이션’(2009년)에서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여고생으로 ‘팔색조’ 연기를 선보였다. 해맑은 표정 속에 천의 얼굴을 간직한 ‘영국의 전도연’이다.
그는 지난달 막을 내린 칸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다. CGV무비꼴라쥬는 ‘이달의 배우 기획전’ 주인공으로 그를 선정하고 출연한 영화들을 틀고 있다. 이 행사의 이전 주인공인 앤 해서웨이, 메릴 스트립 같은 대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멀리건은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여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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