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탱천한 시골 할머니의 보무(步武)를 원색의 배경 위로 재미나게 강조한 책 표지는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팔리는 키치(의도적으로 저속한 문화를 추구하는 예술 표현법) 잡지를 연상케 하지만 내용은 장난 아니다.
저자는 서울에서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06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로 귀농했다. 지리산닷컴을 개설해 농촌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는 2012년 3월 이곳에 3300m2(약 1000평)의 땅을 빌린 뒤 ‘맨땅에 펀드’를 만들었다.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계좌당 30만 원씩 투자자 100명을 모집했다.
책은 그해 3월부터 11월까지 저자가 지리산닷컴에 게재한 ‘맨땅에 펀드’ 주간보고서를 엮은 것이다. 각 장의 끝에는 실제 배당 때 편지에 동봉한 배당 안내문을 그대로 수록했다. 배당은 경작한 땅에서 나온 밀, 감자, 감, 땅콩, 고구마, 배추, 무와 인근 농부들에게서 구입한 산마늘, 두릅, 오이 같은 걸로 이뤄졌다. 이 ‘펀드운용보고서’는 농사 문외한인 저자의 좌충우돌 농업기다. 농사짓는 과정을 ‘코믹 삼국지’처럼 구성지게 묘사한 글맛이 일품이다.
농사에 도통한 마을 할머니들인 ‘대평댁’ ‘지정댁’ ‘대구댁’을 저자는 수석펀드매니저, 펀드매니저 등으로 부른다. 이 ‘댁’들의 적나라한 전라도 사투리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대화체도 배꼽 잡게 한다. 작물 관리 방법도 빼곡하게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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