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저자와 차 한잔]“야생 독수리로 늑대 잡는 모습에 전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8일 03시 00분


‘독수리 사냥’ 펴낸 찻집 주인 이장환 씨
◇독수리 사냥/이장환 사진·글/256쪽·2만5000원/삼인

몽골의 카자흐족은 초원이 혹독한 추위로 얼어붙기 전 겨울나기 준비로 독수리를 이용해 사냥해왔다. 이제는 생계보다는 독수리 사냥과 말 달리기 시합, 전통 공연이 어우러지는 축제가됐다. 서울 성북동에서 작은 찻집을 운영하는 이장환 씨는 “사라져가는 옛 시간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몽골의 카자흐족은 초원이 혹독한 추위로 얼어붙기 전 겨울나기 준비로 독수리를 이용해 사냥해왔다. 이제는 생계보다는 독수리 사냥과 말 달리기 시합, 전통 공연이 어우러지는 축제가됐다. 서울 성북동에서 작은 찻집을 운영하는 이장환 씨는 “사라져가는 옛 시간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처음 몽골의 독수리 사냥을 보고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어요. 거대한 새의 아우라와 야생성, 점잖음이 배어나는 사냥꾼의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이장환 씨(30)는 대학생이던 2005년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독수리 사냥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몽골에 갔다. 이후 2010년까지 모두 네 차례 몽골의 바양울기를 다녀왔다. 거기서 찍은 사진과 글을 모아 ‘독수리 사냥’(삼인)을 펴냈다.

저자는 찻집 주인이다. 5일 서울 성북동에 있는 그의 찻집에서 만났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찻집은 10석이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다. 차분하게 차를 내어주는 그는 호랑이 사진을 찍으러 네팔에도 다녀왔을 정도로 생태사진에 빠져 있다.

바양울기는 북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 카자흐스탄, 남쪽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는 몽골 서쪽의 험난한 오지 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이 몽골어가 아닌 카자흐어를 쓴다. 금발과 파란 눈의 몽골인도 있다.

“야생 독수리로 늑대를 잡는 독수리 사냥은 알타이 산맥의 거친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통입니다. 매사냥으론 불가능한 사냥을 대신한 겁니다. 오랜 가업으로 어려서부터 가족에게서 사냥법을 배우죠.”

책에는 대를 물려 독수리사냥꾼으로 살아가는 몽골 내 카자흐족의 생활과 독수리사냥꾼이 독수리를 잡아 길들이고 훈련시키는 과정이 담겨 있다. 수렵과 채집으로만 먹을거리를 구하던 옛 시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씨에 따르면 한 명의 사냥꾼은 보통 일생 동안 독수리 10여 마리와 사냥을 한다. 3년, 길게는 5년 정도 길들여 사냥에 쓰다가 독수리가 나이가 들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살아 늙고 쇠약해진 독수리 한 마리를 데리고 사는 노인도 있었다.

“카자흐족을 만나고 사진을 찍으면서 사라지는 독수리 사냥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현지에서도 좋은 독수리로 사냥을 잘하는 남자를 우상으로 여기던 시절은 옛 이야기가 됐더군요.”

책 어디에도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는 목판화가 이철수 씨(59)의 장남이다. 2011년 이철수 씨의 데뷔 30주년 전시회의 표제작 ‘새는 온몸으로 난다’는 아들이 찍은 원본 사진을 판화로 옮긴 것이다. 아들은 나중에 “사진보다 그림이 더 멋지다”고 아버지를 치켜세웠다.

바양울기 최고의 사냥꾼으로 꼽히던 노인 흐므르항. 삼인 제공
바양울기 최고의 사냥꾼으로 꼽히던 노인 흐므르항. 삼인 제공
책에 소개된 사냥꾼 흐므르항 사진은 그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다. 2006년 독수리 사냥 축제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독수리를 기르던 그를 이듬해에는 만날 수 없었다. “희고 부드러운 늑대 털외투에 빨간 털모자를 쓰고, 안경 너머로 지그시 새를 바라보던 풍모가 퍽 인상적이었어요. 어린이부터 청년들에게까지 사냥법을 전수하고 좋은 독수리를 잡아서 주기도 했던 어르신이었는데 돌아가셨어요.”

현지 마을은 이제 점점 빈집이 늘어가고, 관광객을 상대로 독수리 사냥을 시연해 보이는 ‘가짜 사냥꾼’도 생겼다고 한다.

그는 11∼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갤러리 구하에서 ‘독수리 사냥’ 첫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찻집 (운영) 때문에 다음 여행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바양울기의 석상이나 암각화도 사진에 담아오고 싶어요.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는 모습이니까요.”

독수리 사냥에 빠진 서른 살의 찻집 주인 꿈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가끔 ‘넌 판화는 안 하니?’라고 묻기도 하는데 오히려 가족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차와 독수리 사냥, 사진 찍기도 좋아하고…. 현재는 이대로가 좋아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흐므르항#독수리 사냥#이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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