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정착해 지역에서 발굴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는 출판사 ‘남해의 봄날’ 사람들. 왼쪽부터 ‘반디’ 박소희 대리, ‘푸른’ 장혜원 팀장, ‘봄’ 정은영 대표, ‘새벽’ 천혜란 사원. 남해의 봄날 제공
“통영에 가서 산다니까 ‘그물 던지는 어부나 호미 잡는 농부가 되려나 보다’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죠.”
7일 경남 통영시 봉평동에 있는 출판사 ‘남해의 봄날’ 사옥에서 만난 정은영 대표(41)는 짧은 머리를 툴툴 털어 넘기며 웃었다. 출판사 앞 화단에 작은 텃밭을 가꾸는 정 대표는 백화점 대신 선착장 근처 시장에 나가 먹을거리를 사오며 지내는 일에도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는 만 3년간 통영살이를 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최근 두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은 통영을 중심으로 남해안 곳곳의 제철음식을 따라 미식여행을 하는 젊은 부부가 쓴 책.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은 지방에 새 둥지를 튼 작가, 연극 연출가, 큐레이터가 쓴 자신들의 이야기.
“서울에서 브랜드 마케팅 회사를 7년째 운영할 때 두 번 실신했어요. 과로로 만신창이가 됐죠.” 건축가인 남편 강용상 씨(44)와 1년간 안식년을 갖기로 하고 무작정 서울을 떠났다. 2011년 우연히 찾은 통영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정착했다.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광이 무척 아름답고 전통누비, 나전칠기, 김춘수와 박경리, 윤이상처럼 문화 예술인들의 유산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그리고 이듬해 ‘남해의 봄날’을 차렸다. 정 대표를 포함해 직원이 4명인 아담한 회사다. 출판 시작 첫해인 지난해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로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대상을 받았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시작한 일이라 시행착오도 많았다. “통영은 얼굴을 마주보고 믿음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계약서대로 칼같이 일하는 습관이 배어 있었거든요. 초반에는 ‘서울깍쟁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정 대표는 ‘무식해서 용감했다’며 치열했던 첫해를 떠올렸다. “서울 마포와 경기 파주에 밀집해 있는 출판사들의 정보력을 간과했죠. 유통과 마케팅에서 특히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책의 70% 이상이 수도권에서 팔리는 상황에서 서점을 다니며 책 진열 상황을 확인하고 유통사 상품기획자(MD)에게 책을 소개하고 노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거의 못했다.
“지금은 파주에 창고를 두고 유통대행사, 마케팅 외주업체와 함께 일해요. 앞으로 창원의 인쇄소를 이용하고, 경남지역 출판사들과 함께 외주업체에 마케팅과 유통을 맡기는 시스템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방이 지닌 강점도 많다. 우선 저자 발굴이 그렇다. “한 명과 친해지면 줄줄이 소개시켜 주려고 할 만큼 이웃과 교류가 활발하거든요.”
기획회의를 할 때 천천히, 깊이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서울과는 다른 이곳만의 특징이다. 정 대표는 이날도 사량도에서 열린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섬마을 콘서트’에 직원들과 함께 다녀와 기획회의를 이어갔다.
정 대표는 회사에서 ‘사장님’ 대신 ‘봄님’이라고 불린다. 다른 직원들도 팀장, 에디터라는 호칭 대신 ‘푸른’ ‘새벽’ ‘반디’라는 애칭을 쓴다. 빡빡한 지하철이나 버스가 아닌, 고즈넉한 길을 걸어서 집과 회사를 오가는 직원들은 식구처럼 가깝다.
서울을 떠나는 정 대표를 보며 처음에는 다들 ‘무모하다’고 했지만 이젠 ‘소도시에서 일을 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해오는 서울의 지인도 늘었다.
“작은 도시에서 일하는 것이 꼭 환상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해줘요. 하지만 추천합니다.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콘텐츠는 서울만큼이나 무궁무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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