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A 씨는 최근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내용증명서를 받았다. 이달 30일까지 책을 출간하지 않으면 2009년 재단으로부터 받았던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A 씨는 억울한 면도 있다. 시집을 내기 위한 원고는 몇 해 전 이미 완성했지만 출간하고 싶은 출판사와 일정이 맞지 않았기 때문. 결국 A 씨는 당초 고려하지 않았던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창작기금을 받고도 책을 내지 않은 문인들에게 지원금 환수라는 ‘칼’을 빼들었다. 재단이 독촉을 넘어 지원금 환수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재단은 매해 60여 명의 문인들에게 1000만 원씩의 창작기금을 지원해 왔는데, 문인들은 지원 시점으로부터 1년 반 이내에 책을 출간해야 한다. 하지만 출판 불황 속에서 애초 약속했던 기한을 넘기는 문인들이 늘자 재단은 2년간의 유예를 더 줬다. 그리고 이번에 지원받은 시점으로부터 3년 반이 넘었지만 미출간한 문인 10여 명에게 결국 환수조치를 알린 것이다.
재단 측은 “지원금은 세금으로 마련된 것이어서 결과를 내지 못한 부문에 대해 환수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해 2월 서울시 종합감사에서 (미출간)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물론 몇 년이 지나도록 책을 출간하지 않은 문인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도 크다. 한 출판사 사장은 “지원금을 받은 문인들이 출간을 부탁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손해를 볼 게 뻔한 시집이나 소설집 계약에 선뜻 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단은 창작기금의 일부를 출판 지원금으로 돌리는 방안이나 몇몇 출판사와 출간 협조를 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지원 제도를 둘러싸고 재단과 문인이 얼굴을 붉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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