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天安門) 사태 24주년을 맞은 4일 중국 포털사이트에서는 ‘6·4(톈안먼 사태 발발일)’ ‘딩쯔린(丁子霖·톈안먼어머니회 설립자)’ ‘촛불’ 같은 단어의 검색이 차단됐다. 한국 같으면 당장 거리로 뛰쳐나갈 일이지만 누리꾼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취업난이나 부패에는 민감하지만 이를 정치체제의 문제로 걸고넘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서방 학자들은 중국의 소득이 늘어나면 민주화 요구가 고개를 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011년 세계를 휩쓴 ‘재스민 시위’마저 중국을 비켜갔다.
중국 국민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3월 출간된 ‘중국인은 어떤 민주를 원하나(中國人想要什마樣的民主)’는 이 물음에 일부나마 답을 내놓았다. 저자인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소 장밍수(張明澍) 부연구원은 전국 1750명을 상대로 ‘민주주의’를 물었다.
사회과학원이 국무원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조사 결과에서도 관변 냄새가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종류의 연구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인들의 정치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인터뷰는 ‘민주주의가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라는 매우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했다. 당연한 답이 나올 것 같지만 예상 외로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많았다.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렵다. 중국 상황에 맞는지를 봐야 한다’는 대답이 40.2%를 차지한 것. 대학 졸업자 중에서는 53.6%가 이같이 반응했다.
공산당 일당독재 대신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치르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할 것 같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식 양당제 수용 여부에 대해선 61.1%가 반대했다.
물론 중국인들도 정치적 민주주의를 원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를 정치권력에 투영시키기보다는 정치권 자체의 정화를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응답자들은 민주주의가 왜 진전돼야 하느냐는 물음(복수 응답)에 72.3%가 ‘부패가 심해서’라고 지적했다. ‘정기적인 선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18.9%에 불과했다. 정치체제 개혁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청렴한 정부 건설’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31.1%)을 차지했다. 정치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필요한 상황에서만 참여’(37.8%), ‘가능하면 적게 참여’(32.5%), ‘관심과 참여’(29.3%) 순으로 조사됐다.
사회과학원은 1988년에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때보다 중국인들의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부패 등으로 초래된 경제적 불공평에는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중국의 정치의식은 아직 멀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보기에는 서구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당분간 몸에 맞지 않는 옷이다. 인권운동가들이 대중과 유리된 채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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