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행당동 작은 한옥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건축과 재학 시절엔 북촌 가회동 한옥마을을 실측했으며, 미국 예일대 유학 후 서울 서촌에 건축사사무소를 차린 뒤 10년간 북촌을 중심으로 한옥 11채를 짓거나 고쳤다. 한옥의 현대화를 고민해 오던 그는 2007년 동아일보 아파트 연재물에서 ‘한옥 아파트’를 제안했는데 이후 한옥 아파트 짓기가 붐을 이뤘다.
그런 그가 북한 관광객이 찍어 온 개성 구도심의 한옥촌 사진을 그냥 보아 넘길 리 없었다. 개성은 6·25전쟁의 폭격을 피해 갔고 이후 체제의 특성상 개발의 광풍도 비껴갔다. 그래서 쇠락했으되 살아남은 한반도 최대 한옥촌이 사진 속에 있었다.
“제가 작업해 온 북촌과 다르지 않더군요. 개성 가서 고쳐 보라고 하면 북촌에서 일하던 방식으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만한 한옥촌이 남아 있으니 대목장 소목장 와공 목공 같은 한옥 건축 인력도 있을 것이다. 이 인력을 활용해 개성 공단에 치목(治木·재목을 다듬고 손질함)공장을 세우고 한옥 부품을 생산한다면, 그래서 육로로 전국에 조립식 한옥을 판매한다면….
황 소장은 한옥의 현대화에 북한이라는 화두를 더해 수년간 고민해 온 끝에 개성에 한옥 생산기지를 만드는 대북 사업안을 완성했다. 남북한 전문가가 함께 개성 한옥촌을 개·보수해 서울 북촌처럼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 및 한옥 체험 시설로 조성하고, 개성공단에 치목공장을 세운 뒤 현지의 인적 인프라를 활용해 조립식 한옥을 생산한다는 내용. 한옥촌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조만간 정부에 북한 방문과 대북사업 승인 신청도 낼 계획이다.
“한옥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비용이 양옥의 1.5배나 됩니다. 건축 현장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데다 국산 육송을 벌목해 운반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인건비가 저렴한 개성 한옥 인력으로 공장에서 치목해 현장 작업을 최소화하고, 한국산 소나무와 비슷하면서도 벌판에서 자라 벌목과 수송이 쉬운 시베리아산 소나무를 쓴다면 가격을 낮출 수 있습니다.”
황 소장의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남한에서는 이런 한옥 짓기가 가능하다. 한옥 설계도를 그려 개성 치목공장으로 보내면 공장에서는 육로로 수송해 온 시베리아산 소나무를 도면대로 깎아 내려 보낸다. 남한의 건축 현장에서는 이 부품들을 조립해 마무리한다.
“한옥을 싼 가격에 지으려면 한옥의 산업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위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된 상황입니다. 이 사업이 승인을 얻는다면 남한의 한옥 전문가들이 현지 한옥촌의 실측 조사부터 해야겠지요. 개성공단에 한옥 건축 인력을 재교육하고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두어야 하고요.”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시작하더라도 끝을 볼 수 있을까. 가늠하기 어려운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는 수년 전부터 동료 건축가 및 전문가들과 북한의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구글어스로 북한의 시가지를 샅샅이 들여다보며 사업 계획을 다듬고 있다.
“건축가로서 한반도로 시야를 넓혔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우선 북한 사회가 열리도록 돕고, 경제적인 동시에 정서적인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죠. 고려의 수도였던 천년고도 개성의 문화유산과 개성 공단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개성은 세계적인 목조건축의 전통을 자랑하는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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