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
2013년 6월 17일 월요일 비 많이. 장마. #62 Chrisette Michele ‘A Couple of Forevers’(2013년)
장마라서 그런지 온몸이 끈적끈적하다. 마치 세상의 대기가 온통 R&B로 덮인 듯.
작은 방의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놓고 미국의 여성 R&B 가수 크리셋 미셸이 최근 낸 3년 만의 새 앨범 ‘베터’를 큰 소리로 재생한다. 물방울 같은 음표 더미가 귀에 달라붙는다. 미셸의 목소리와 창법은 끈적하다. 근데 이상하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경쾌한 곡 ‘리치 힙스터’나 ‘비주얼 러브’를 빼면 대개가 중간이나 그보다 느린 빠르기의 곡들인데도. 그의 노래를 듣는 일은 기분 좋은 곡예를 보는 일처럼 중독적이다. 음반사를 데프잼에서 전통의 모타운으로 옮긴 것도 재즈에까지 일가견이 있는 미셸에게 잘 어울리는 선택인 것 같다.
미셸은 얼마 전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관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식습관에 있는 것 같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배를 가볍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풍성하게 물결치던 머리를 군인처럼 바짝 깎은 것도 업그레이드의 비결 중 하나일까. 3월 텍사스 음악축제에서 긴 대기줄 탓에 그의 공연 보기를 포기했던 게 무척 후회된다.
지난 주말 국내에서 처음 열린 여성 음악인들의 축제는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실력 있는 여성 뮤지션이 많이 참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요정’보다는 ‘마녀’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들이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상업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 미셸과 마찬가지로 채식을 한다는 국내 가수 H의 무대도 화려한 밴드 편성과 빵빵한 코러스를 걷어내면, 공허했다.
미국에서 1997년 생겨난 여성 음악 페스티벌 ‘릴리스 페어(Lilith Fair)’가 떠올랐다. 여성 뮤지션들에 대한 차별에 항의하며 싱어송라이터 세라 매클라클런이 공동 설립한 그 축제는 3년간 1000만 달러(약 112억 원)의 여성 복지기금을 모으며 성공했지만 2010년 행사의 실패로 끝내 막을 내렸다.
여성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그건 아름답다. 뱃속에서 듣던 엄마의 목소리에 가까워서인지. 신체부위를 잘라내면서까지 여성과 같은 목소리를 내려 했던 남성들도 있었잖나. 창밖으로 비가 듣기 시작한다. 듣고 싶어졌다. 빗소리 연주 위를 미셸보다 더 부드럽게 유영하던 어머니의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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