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별들이 밝히는 ‘예능의 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9일 03시 00분


‘왕별’이 지배하던 버라이어티쇼에도 집단지성이 대세?

요즘 예능은 ‘왕별(★)’ 볼 일이 없다. 스타급 메인 진행자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차지했던 자리를 일반인이나 인지도가 낮은 연예인들이 대신하고 있다. 스타가 없어도 이 프로들의 시청률은 승승장구한다.

주말 예능 시청률 톱을 지키는 MBC ‘일밤’이 대표적이다. 16일 방송된 1부 ‘아빠 어디가’와 2부 ‘진짜 사나이’의 평균 시청률이 14.1%를 기록한 ‘스타 예능’이다(닐슨코리아리서치 자료). 하지만 정작 스타 출연진은 없었다. ‘진짜 사나이’의 개그맨 샘 해밍턴이나 손진영은 ‘일밤’ 출연 이전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중고 신인’들이다. ‘아빠 어디가’에서 아들 윤후 덕분에 자칭 ‘후빨’을 누리는 가수 윤민수도 스타급은 아니다.

KBS ‘인간의 조건’ 출연진도 마찬가지. 개그맨 박성호 정태호 양상국은 ‘개그콘서트’ 밖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연예인이다. 혼자 사는 남자 연예인들의 실생활을 보여주는 MBC ‘나 혼자 산다’의 탤런트 이성재 김광규 서인국도 예능 고정 출연은 처음이다. KBS ‘안녕하세요’는 제작진에 사연을 보낸 일반인들이 주인공이다. 이 프로에서 연예인 게스트는 조연일 뿐이다.

방송 관계자와 평론가들은 이 같은 추세에 대해 시청자와의 ‘공감’이 중요한 예능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석한다. 한때 지배적 트렌드였던 ‘힐링’ 대신 시청자들과 사는 모습이 비슷한 친숙한 인물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는 설명이다. SBS ‘야심만만’과 ‘강심장’의 계보를 잇는 스타 토크쇼 ‘화신’ 같은 포맷은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MBC ‘무릎팍 도사’가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SBS ‘힐링캠프’가 식상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공감 코드의 예능은 방송이 끝나면 시청자 게시판에 두런두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청소감이 줄줄이 올라온다. ‘나 혼자 산다’ 게시판에는 “누구와 공유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것들을 나눌 수 있다. (출연자들이) 혼자 사는 나와 동지가 된 것 같다” “일본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이 방송 보면 외로움이 사라진다”는 글이 올라왔다. ‘진짜 사나이’ 게시판에도 “제대 이후 이 정도로 추억에 잠길 만한 내용을 다룬 방송을 본 적이 없다” “전우애를 나누던 선후임들이 생각난다”는 감상평이 많다.

김호상 KBS CP는 “요즘 예능은 군대 체험이나 캠핑 등 당일 녹화로 끝나기 어려운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스타급 진행자보다) 긴 시간 동안 한 프로에 집중할 수 있는 출연자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한때 ‘국민 MC’로 불렸던 강호동이 방송 복귀 이후 부진을 계속 겪는 것도 공감 코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과장된 리액션으로 나홀로식 튀는 진행을 하면 ‘오버한다’는 비난을 받기 쉽다. 반면 유재석은 MBC ‘무한도전’의 못난이 멤버 중 하나로 묻혀있다. 튀지 않는 캐릭터가 유재석이 롱런하는 비결이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스타 한 사람이 계속해서 새로운 웃음을 주기는 어렵다. 인재 풀이 큰 일반인이나 인지도가 낮은 연예인들에게서 더 많은 웃음을 끌어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