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시 구절대로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적으로 비범한 한 젊은 연주자가 우리에게 그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은 소중한 프롤로그이다. 2008년 몬트리올 심포니와의 협연 무대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2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최예은의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반겼으리라.
첫 번째 곡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D.574에서 바이올리니스트는 아직 몸이 덜 풀린 감을 비쳤다. 예민한 감수성과 향긋한 서정미가 돋보였지만 악절과 악절 사이를 유연하게 처리하는 호흡 조절이 모자랐다. 능수능란한 솜씨로 면밀하게 솔리스트를 받쳐주는 로버트 쿨렉의 노련한 반주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피아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기에 ‘그랜드 듀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 해석은 무난한 편이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한결 나았다. 밝고 따뜻하며 아늑한 연주였다. 최예은의 바이올린은 낭랑한 음성으로 어느 봄날 저녁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노래했다. 악상을 허파 깊숙이 흠뻑 들이켜 스스로 만끽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전반부의 모든 아쉬움을 잊게 하는 명연이었다. 예리하게 곧추세운 톤, 대범하고 강인한 비브라토, 확고부동한 추진력. 명철한 지성과 풍부한 정열이 팽팽한 대립구도를 형성하며 극적 긴박감을 연출했다.
최예은은 ‘조국의 운명을 기리는 고대 음유시인의 명상, 투쟁하는 세력의 용서 없는 격돌, 젊은 여성의 한탄, 무장한 러시아의 힘, 사람들의 자유로운 환호성’이라 압축한 프로코피예프 전기 작가 이스라엘 네스티예프의 작품 묘사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침울한 분위기로 가득한 1악장 끝부분의 바이올린 선율은 ‘묘지에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스산했다. 당당하면서도 앙칼진 야유로 얼룩진 2악장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3악장의 온화한 사색, 4악장의 복잡한 리듬 처리도 훌륭했다. 이윽고 음악은 침묵의 위력을 속삭이며 나직이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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