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궁중음식 연구가 한복려 씨가 말하는 ‘한국요리의 기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7일 03시 00분


오이 가지 호박음식 열 식혀줘
음식냄새 풍기는 집이 정겹죠

24일 만난 궁중음식 연구가인 한복려 씨는 “맛있는 음식에는 거창한 비밀이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재료에 간만 맞추면 충분히 훌륭한 음식이 된다”고 말했다. 한독약품 제공
24일 만난 궁중음식 연구가인 한복려 씨는 “맛있는 음식에는 거창한 비밀이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재료에 간만 맞추면 충분히 훌륭한 음식이 된다”고 말했다. 한독약품 제공
“궁중음식이 어렵고 복잡하다고 생각하는데 조리법이 다양한 거지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음식에는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는 게 아닙니다. 좋은 재료에 간만 제대로 맞으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맛이 나는 거지요. 거창한 것도, 복잡한 것도 없습니다.”

궁중음식 연구가인 한복려 씨(66)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다. 요리연구가인 고(故) 황혜성 씨의 맏딸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궁중음식을 전수받았다. 그는 현재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조선왕조 궁중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 씨는 한독약품과 함께 일반인을 대상으로 ‘궁중음식 배우기’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달 22일에는 다문화가정 주부 및 일반인 60명을 초대해 초여름 조선시대 궁중에서 즐겨 먹던 맥적과 죽순채, 소면 등 보양식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24일 한옥으로 지어진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한 씨를 만났다. 그는 생률 위에 앵두편을 얹은 간식과 오미자차를 기자에게 내주었다. “궁중음식의 기능적인 것을 가르치기보다 한국음식의 기본과 문화에 대해 주로 강의한다”는 말과 함께였다.

“궁중음식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30, 40대 여성이나 전문직 직장인이 대부분을 차지해요. 일단 요리에 대한 기본은 돼있는 상태에서 한국음식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해요. 저는 칼부터 내려놓으라고 가르칩니다. 음식이란 칼자루를 먼저 들고 부딪치는 게 아니에요. 음식에 대한 밑그림을 확실하게 그리고 나서 칼을 쥐어야 하는 거죠. 도마 위에서 자기 재주를 피우며 요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리는 돋보이기 위한 게 아니에요. 자기 수양이죠.”

요리의 기본으로 신선한 제철 재료를 강조하는 한 씨는 무더위를 대비해 집에서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추천했다. 몸을 시원하게 해주는 재료인 오이 가지 호박 등을 활용한 요리와 고기 대신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콩국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콩보다 깨를 갈아서 먹는 걸 선호했다며 깨와 닭고기 국물을 섞은 냉국도 권했다. 한 씨는 “궁중에서는 호박 사이에 저민 고기를 넣어 찜을 해 먹기도 하고 호박젓국나물이나 가지나물로 열을 식히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이런 반찬들이 가정집 식탁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맛집은 숨어 있어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반면,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가정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한 씨는 “가정음식은 재료만 좋다면 요리법은 최대한 단순해야 하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생선 한 토막에 김치, 나물로도 충분히 훌륭한 밥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통체증을 감수하고 멀리 있는 식당에 가서 먹는 것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족과 함께 집에서 빈대떡 부치는 게 더 어려운 일일까요. 바쁘다고 요리를 안 하다 보니 음식 만드는 것 자체가 귀찮고 싫어지는 거죠. 궁중요리를 연구하는 저도 매일 성찬을 차려 먹지는 않아요. 주로 단순한 재료를 가지고 간장 설탕 식초를 써서 만드는 요리를 해먹죠. 빈대떡이라도 부쳐서 집 안에서 음식 냄새를 풍겨야 합니다. 그 냄새가 아이들에겐 가족에 대한 추억으로 평생 남는 거니까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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