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만년에 그린 진품” vs “어색하고 실수많은 모사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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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풍속도첩 진위논쟁 다시 가열

단원풍속도첩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당’. 오른쪽 위의 두 그림은 서당에서 왼쪽 위에 있는 학동의 과장된 어깨 부분으로,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아래 그림처럼 수정하면 훨씬 자연스럽다며 모사본의 증거라고 봤다. 다른 학자들은 이를 김홍도의 특징으로 보거나 가벼운 실수라고 주장한다. 동아일보DB·강관식 교수 제공
단원풍속도첩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당’. 오른쪽 위의 두 그림은 서당에서 왼쪽 위에 있는 학동의 과장된 어깨 부분으로,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아래 그림처럼 수정하면 훨씬 자연스럽다며 모사본의 증거라고 봤다. 다른 학자들은 이를 김홍도의 특징으로 보거나 가벼운 실수라고 주장한다. 동아일보DB·강관식 교수 제공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

이런 명칭이 어떤 이는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단원 김홍도(1745∼?)의 ‘서당’ ‘씨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선 풍속화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이 그림들을 포함해 모두 25점이 담긴 화첩이 단원풍속도첩이다. 보물 제527호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화첩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풍속화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진본이다, 위작이다, 모사본이다 오랫동안 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특히 지난해 강관식 한성대 교수(56)가 “25점 모두 단원이 그린 게 아니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데 최근 이에 대한 반론이 다시 나오면서 또 한번 단원풍속도첩이 주목받고 있다. 이중희 계명대 교수(58)는 한국동양예술학회에 ‘단원풍속화첩 진위 문제에 대하여’를 발표하고 “화첩은 모두 단원이 그렸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을 세 가지 관점으로 정리했다.

○ 주제의식 담은 단원의 만년 걸작

이중희 교수의 논문은 학계의 전반적 의견과 맥을 같이한다. 보물로 지정된 화첩은 당연히 진품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의 천주현 학예연구사(43)도 지난해 화첩의 재질과 필치를 분석해 단원 한 사람이 그렸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이 화첩은 단원이 만년에 풍속 표현을 집대성하려는 의도 아래 실내에서 주도면밀하게 구성하고 배치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성이 떨어져 손의 방향을 틀리게 그리는 사소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생동감 넘치던 젊은 날보다 묘사에 힘이 떨어지는 것도 시기적 요인으로 분석했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단원의 말년 작으로 한정짓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본질을 적확하게 짚어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런 약점에 사로잡혀 이 화첩의 ‘시대적 예술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이 교수는 주장한다. 18세기 유행한 새로운 형태의 씨름문화를 담은 ‘씨름’, 일하는 평민들 옆에 버젓이 드러누운 양반을 통해 계급사회를 보여준 ‘타작’, 서민 아이들도 한문을 배우기 시작한 당대 시대상을 담은 ‘서당’에는 대가가 아니면 힘든 성취가 담겼다는 설명이다. 또 이 교수는 “몇몇 작품이 여러 다른 화가가 섞여 그린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모필(毛筆·짐승털 붓)과 죽필(竹筆·대나무를 쪼개서 쓰는 붓)의 병용을 오해한 탓”이라고 말했다.

○ 단원은 실수를 허용치 않는 천재 화가


강 교수는 “이 교수의 논문을 봤다. 건강한 토론을 기대한다”면서도 “이 교수의 주장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진작을 보면 단원은 매우 세밀한 묘사조차 정확하게 그려내는 능소능대(能小能大)한 천재인데, 유독 화첩에서만 실수가 잦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단원풍속도첩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들이 가장 문제 삼는 대목이다. 화첩 안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당’ ‘씨름’ ‘무동’조차 어깨가 어색하게 과장됐거나 손 방향이 틀린 부분이 나온다.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있는 씨름 구경꾼은 엄지손가락이 밖으로 향해야 하는데 안으로 향해 있다.

강 교수는 “심지어 나룻배는 화풍도 균일하지 않고 필치도 매우 떨어져 진짜 단원이 그렸다면 스스로 찢어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작품은 오히려 긍재 김득신(1754∼1822)의 영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봤다.

이 때문에 강 교수는 “화첩은 단원의 후학인 도화서 화원들이 선배들의 훌륭한 작품을 교본으로 삼기 위해 만든 모사본”이라고 평가했다. 단원풍속도첩도 ‘단원류(流) 풍속도첩’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일부는 진품이고 나머지는 위작

대척점에 선 두 입장과 달리 화첩은 진품도 있으나 상당수 위조품이 섞여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48)는 2008년부터 “서당과 무동, 씨름, 활쏘기, 대장간, 서화감상 6점은 진짜고 나머지 19점은 두 명 이상의 위조자가 그린 가짜”라고 주장해왔다.

이 전 교수는 서당에서 학동의 어깨가 과장된 것은 단원 그림의 특징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작품에도 이런 과장된 어깨는 여러 차례 등장한다는 주장이다. 손 방향이 잘못된 것은 거침없이 빠르게 그려나가는 스타일인 단원의 실수로 시대적 한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작품은 도장을 위조했거나 테두리 필선이 짜깁기된 위작이라고 봤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단원풍속도첩#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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