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 개론’…. 저자가 제작사 명필름 대표로 세상에 풀어 놓은 영화들이다. 수많은 이야기로 여러 사람 울리고 웃긴 그가 이번에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150cm 키에 225mm 신발을 신던 작은 엄마가 준 끝 모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주제다.
가난한 집 4남매의 맏딸로 헌신적인 엄마를 ‘새끼 악마’처럼 부려먹던 저자. 결혼해 예쁜 손녀를 안겨드리며 효도할 즈음 엄마는 희귀 병에 걸렸다. 근위축성측삭경화증.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한다. 결국 영화 ‘사생결단’을 만들던 7년 전 어느 날 임종도 못하고 엄마를 떠나보냈다. 손녀 씻긴 물로 세수도 하고, 걸레도 빨고, 화초에 물도 주던 그 엄마.
담백하지만 우아한 그의 영상언어를 지면에 옮겨 놓은 듯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펜 끝이 날카롭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가느다란 감정의 실을 풀어 내 이야기를 엮어 가는 솜씨가 좋다. ‘친한 친구 한 명 제대로 없이 공상과 상상에 빠져 흐물거리는 낙지처럼 꿈틀대는 십대’, ‘어느 날 문득 늙어 있는 게 아니라 한 가지씩, 낱낱이 확인 도장을 받듯이 스스로 늙음을 증명한다’ 같은 문장이 그렇다. 그러고 보니 국문학과 출신에 영화사 카피라이터를 지냈다.
중학교 때는 동기생을, 고등학교 때는 지리 선생님을 스토킹했다는 등 내면에 대한 고백도 흥미롭다. 33편이나 되는 작품으로 한국 영화계를 쥐락펴락해 온 그이지만 소심한 자신을 일으키고 간신히 용기를 내 영화를 만든다고…. 책을 내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