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출신 소설가인 이언 뱅크스(사진)가 9일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암 진단을 받은 작가를 위해 출판사 리틀브라운은 서둘러 20일에 그의 마지막 작품 ‘채석장’을 출간했다. 뱅크스는 사망 3주 전쯤 편집이 끝난 최종본을 받아 보았다고 한다.
유작이 된 소설 ‘채석장’은 병에 대한 소설이다. 바로 뱅크스를 죽게 만든 암을 다뤘다. 그러나 부인 아델 하틀리에 따르면 이는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 뱅크스가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이미 초고를 거의 완성한 상태였다.
소설은 주인공 가이의 아들인 17세 소년 키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키트는 뛰어난 지능을 지녔지만 거의 병에 가까울 정도로 덜떨어진 사회성을 지녔다. 게다가 어머니도 없이 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와 넓은 채석장의 끄트머리에 있는 조용한 시골집에서 살아왔다.
아버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키트는 아버지의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20여 년 전 대학에서 처음 만나 철없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오랜만에 가이의 병석에 모인다.
키트에겐 삼촌이나 마찬가지인 가이의 절친 폴은 미디어 전문 변호사이자 노동당 입문을 앞두고 있는 야심가다. 평범하고 지루한 회사원 커플인 앨리슨과 로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댄다. 20년 전 아름다운 커플이었던 프리스와 헤이즈는 결별한 지 오래되어 서로 서먹한 관계다. 그리고 가이의 친구이자 멘토이자 옛 여자친구였던 홀도 나타난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이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잠시. 실은 이들에겐 중요한 목적이 있다. 대학 시절 장난삼아 만든 동영상을 찾는 것이다. 키트도 아버지에게 원하는 게 있다. 바로 어머니의 정체다. 그는 가이의 오래된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어머니가 아닐까 의심한다. 과연 이 친구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동영상은 뭘까. 키트는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이는 암과 싸워 이겨낼 수 있을까.
뱅크스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이라고 하지만, 독자들은 암과 치열하게 투쟁하는 주인공 가이에게서 작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남은 시간을 유쾌하게 보냈다고 한다. 암에 걸린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오랜 여자친구였던 하틀리에게 청혼한 것이었단다. “제발 나의 과부가 되어주오”라고.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가 가운데 하나였던 뱅크스의 별세에 BBC와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 수많은 언론이 조의를 표하며 그의 작품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소설 속 가이의 마지막은 작가와 달리 유쾌해 보이진 않는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고 높은 치사율을 지닌 병. 자신 또한 걸려 결국 세상을 떠나게 만든 병인 암을 작가는 어떻게 묘사해 나갔을까. 이언 뱅크스의 유작을 국내에서도 곧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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