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패스트 패션에 열광했는가/엘리자베스 클라인 지음/윤미나 옮김/320쪽·1만3000원/세종서적
요즘엔 갑작스럽게 칵테일파티에 초대받아도 ‘뭘 입고 가야 하나’ 고민하지 않는다. 중저가 브랜드 옷가게에 가면 단돈 몇 만 원에 그럴싸한 미니드레스 하나쯤은 건질 수 있으니까. 물론 ‘싼 게 비지떡’이라고, 몇 번 입으면 옷단이 뜯어지고 보풀이 생길 것을 안다. 어차피 유행은 금방 변하니까 버리면 그만이다. 불경기에 저렴한 비용으로 세련된 옷차림이 가능한 ‘패스트 패션’ 애용자를 시크하고 합리적인 소비자로 바라보기도 한다. 패스트 패션 업체는 ‘패션 민주화’의 기폭제로까지 여겨진다.
미국 뉴욕에 사는 자유기고가인 저자는 지난 10년간 H&M, 자라, 포에버21, 올드네이비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평균 30달러 미만의 옷들을 줄기차게 사들였다. 하지만 그 많은 옷들에 전혀 애정이 가지 않았고, 어떻게 그렇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의류공장을 방문해 노동자를 만나고 패션업계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패스트 패션의 뒷모습을 생생히 취재했다.
패스트 패션 업계가 수많은 디자인의 옷들을 짧은 주기로 대량생산하면서 의류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니 당연히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론 경쟁이 치열해져 많은 의류공장이 문을 닫았고, 생존한 공장들은 싼 옷을 만들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의 재봉사는 한 달에 43달러(약 5만 원)밖에 못 받고,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노동자들은 바퀴벌레와 쥐가 기어 다니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
다른 업체의 디자인을 베끼는 일도 빈번하다. 저자는 포에버21이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를 50차례 이상 당했다고 지적한다. 패스트 패션이 환경에 끼치는 폐해도 크다. 합성섬유 제작과정에 유독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대부분이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들어져 자연분해되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
저자는 패스트 패션과 반대되는 ‘슬로 패션’을 제안한다. 각 지역의 개성 있는 디자이너들이 소량으로 정성껏 제작한 옷을 입자는 것이다. 자연분해되고 촉감도 좋은 울과 면 소재를 찾는 것도 좋다. 저자의 말에서 느껴지듯 뭔가 철학을 가지고 옷 입는 사람이 진짜 멋쟁이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입는 옷을 더 적게 소유하고 기꺼이 더 비싸게 사야 한다. 나는 어떤 물건에 지불하는 가격이 누군가의 급여와 연결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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