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의 오페라로 유명한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원작소설을 연극성 풍부한 음악극으로 옮겼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용주 씨는 미국에서 이탈리아 정통희극 연기론인 코메디아 델 아르테 연기술을 배워 왔다. 그런 그가 귀국해 2010년 결성한 극단 벼랑끝날다는 연기뿐 아니라 클래식음악, 현대무용, 한국무용, 아카펠라 등 다양한 예술을 전공한 이들이 뭉쳐서 액터뮤지션 연극을 지향한다.
그 첫 성과물로 3년째 가다듬어 온 이 작품에는 음악과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진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다. 피아노, 첼로, 키보드 연주자들은 비제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하바네라’와 ‘투우사의 노래’를 라이브로 변주하면서 단역 연기도 펼친다. 배우들도 중간 중간 캐스터네츠, 봉고, 색소폰, 리코더, 콘트라베이스, 아코디언 연주는 물론이고 아카펠라까지 들려준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애크러배틱 연기, 집시들의 탭댄스와 카르멘의 뇌쇄적인 춤사위도 곁들여 다양한 볼거리를 펼친다.
특히 질투에 사로잡힌 돈 호세의 꿈 장면 신체연기가 압권이다. 꿈속에서 황소가 된 돈 호세는 카르멘의 새 연인인 투우사 루카스와 투우를 벌인다. 돈 호세가 카르멘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 치정살인을 펼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강렬한 조명과 결합된 극적 마임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오페라보다 원작소설에 충실하게 관찰자 죠바니의 시각에서 돈 호세와 카르멘의 비극적 사랑을 포착한 덕분에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카르멘의 칼잡이 남편 가르시아와 야성미 넘치는 투우사 루카스(오페라에선 멋쟁이 에스카미요로 변형됐다)를 원형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조연과 단역 캐릭터를 코메디아 델 아르테 식 희극으로 풀어낸 깨알 같은 재미도 꽤 쏠쏠하다.
2011년 거창국제연극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배우들의 연기 경력이 짧다 보니 신체 표현에 비해 발성과 화술에선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 죽고 죽이는 비극 속에 녹아든 과장된 희극적 요소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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