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계 ‘갑을병정’은 누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일 03시 00분


■ 영화계… 극장-배급사〉제작사〉홍보대행사〉스태프
■ 방송계… 스타작가-배우〉방송사〉기획사〉일반 배우

영화계의 슈퍼갑으로 불리는 CJ CGV는 지난달 20일 열린 서울 서대문구 CGV신촌아트레온 개관식에서 한국 영화 수익 배분율 조정안을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왼쪽부터 김의석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정 CJ CGV 대표, 이춘연 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 배우 안성기, 원동연 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CJ CGV 제공
영화계의 슈퍼갑으로 불리는 CJ CGV는 지난달 20일 열린 서울 서대문구 CGV신촌아트레온 개관식에서 한국 영화 수익 배분율 조정안을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왼쪽부터 김의석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정 CJ CGV 대표, 이춘연 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 배우 안성기, 원동연 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CJ CGV 제공
‘한국 영화 10년 숙원을 푼 날.’

7월 1일을 영화계는 이렇게 부른다. 이날부터 서울 지역 한국영화 수익 배분율이 기존 배급사 50 대 극장 50에서, 55 대 45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CJ CGV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영화인들은 뿌듯하다. 이들은 10년 전부터 “슈퍼 갑(甲)인 극장이 수익을 더 양보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갑’의 횡포와 ‘을(乙)’의 수난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요즘. 대중 문화계에도 힘을 가진 갑과, 갑에 눌린 을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을의 처지도 못되는 ‘병(丙)’과 ‘정(丁)’도 있다. 비정규직 영화·드라마 제작 스태프가 그들이다. 대중 문화계의 ‘갑을병정기(記)’를 엮어봤다.

○ 영화계 ‘슈퍼 갑’은 극장, 병은 홍보대행사

지난해 극장에서 개봉한 국내외 영화는 631편. 하루 평균 2편 정도의 영화가 매일 쏟아져 나온 셈이다. 공급(영화)은 넘쳐나는데 유통망(극장)은 부족하다. 그래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극장은 영화계의 ‘슈퍼 갑’이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극장 측이 총 매출액의 10% 내에서 무료 초대권을 제공하라는 계약서를 강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짜 표를 발행하면 제작사의 수입이 줄어든다.

다른 ‘갑’은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투자배급사들. 이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는 ‘을’이다. 제작사 관계자에 따르면 1990년 중후반만 해도 투자배급사와 제작사의 영화 수익 배분 비율은 대개 5 대 5였다. 하지만 요즘은 6 대 4가 아주 후한 경우고, 7 대 3 혹은 8 대 2까지 간다. 저작권도 투자배급사의 몫이다.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가 리메이크되면 수익은 투자배급사가 가져간다.

5월 30일 서울 CGV압구정에서는 영화마케팅사협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18개 영화 홍보대행사들이 자신들의 권익 확대를 위해 모인 자리. 홍보대행사는 ‘병’쯤 된다. 이들은 영화 개봉이 임박하면 오전 2, 3시까지 일하는 게 보통이다. 휴일에도 배우들의 지방 무대 인사를 따라다닌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휴일 지방 극장을 돌며 배우 무대 인사를 70번 넘게 진행해도 돈을 더 주지 않는다. 갑들은 우리를 시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화 찍는 현장의 스태프는? 한 스태프는 “우리는 을은커녕 ‘임(壬)’이나 ‘계(癸)’쯤 된다”고 했다. 지난해 전국영화산업노조와 영화진흥위원회의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촬영, 조명, 미술 등 현장 막내 스태프의 연평균 소득은 416만 원에 불과했다.

○ 방송사 밑에 줄 선 외주제작사-연예기획사

방송계의 ‘갑’은 방송사다. 프로그램을 납품해야 하는 외주제작사, 소속 연예인을 출연시켜야 하는 연예기획사는 방송사 앞에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한 중소 드라마 제작사 PD는 “기획이 좋은 드라마라도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방송사가 편성을 해줘야 한다. 방송사는 절대적 갑이다”라고 했다.

스타 작가는 방송사에 ‘갑질’을 한다. 드라마의 경우 스타 작가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스타 작가는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게 방송계 관계자들의 중평이다. 한 공중파 방송사의 CP는 “최근 몇 년 사이 편당 5000만 원 이상을 받는 작가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스타 배우 앞에서는 이 같은 서열도 무너진다. 인기 프로그램의 PD라도 스타 연예인을 모셔오기 위해서는 기꺼이 을이 된다. 과거에는 연예기획사에서 방송사 PD를 접대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PD들이 스타급 연예인을 찾아가 접대하거나 명품을 선물한다.

스타급을 제외하면 배우들 대부분은 병, 정의 처지다. 지난달 19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배우 나문희 등이 참여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지상파 방송 3사의 미지급 출연료가 43억 원”이라고 밝혔다. 방송사가 외주제작 프로를 편성하면서 부실 제작사에 제작을 맡기고, 비현실적인 제작비를 책정해 연기자들이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연기자노조에 따르면 조합원의 90.5%가 지난해 방송 출연료 수입이 1020만 원 이하였다.

민병선·구가인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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