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해질 어스름 무렵의 시장 나물전에 앉은 여인이 “떨이요, 떨이”라고 외친다. 좌판도 없는 길바닥 인도에 엎드리다시피 한 자세로 한낮의 먼지와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하루 종일 다듬은 나물을 미련 없이 털어 낼 시간이다. 지금을 놓치면 시들어 버릴 나물도, 허리 한 번 못 펴고 반복된 그녀의 노동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남은 나물을 툭툭 털어 마지막 손님 손에 들려 보내고 나면, 그녀는 내일도 오늘처럼 푸성귀 속으로 걸어 나오기 위한 꿀맛 같은 잠을 청할 거다.
‘이달에 만나는 시’ 7월 추천작으로 이수익 시인(71·사진)의 ‘엎드려 사는 여자’를 선정했다. 올해로 시력 50년을 맞는 시인이 지난달 펴낸 시집 ‘천년의 강’(서정시학)에 수록됐다. 추천에는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참여했다.
평소 집 근처 모래내시장(서울 남가좌동)을 즐겨 찾는다는 시인은 나물을 손질하는 상인의 모습에서 시상을 떠올렸다. 시인의 눈은 불편한 자세로 나물을 다듬는 이 여인의 손길에서 꼼지락대는 어떤 기운을 본다. 시인은 “시적으로 불행한 대상으로 보이기 쉬운 이 ‘꼼지락거리는 삶’ 속에서 역설적이지만 삶의 생명력과 희망을 보았다”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은 “칠순을 넘겼지만 여전히 그의 시는 젊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 노경의 감회에 대해 쓸 때조차 그의 시는 푸릇하고 젊다”며 추천했다. 이건청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정통을 견인해 온 노시인의 집요한 노력을 보여준다.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적절한 균형 위에 두면서 차분하면서도 울림이 큰 말들을 불러내 보여준다”고 추천평을 썼다.
이원 시인은 김명인의 시집 ‘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를 추천했다. “시력 40년이 된 김명인에게서 확인되는 것은 그가 ‘날개를 편 새’가 아닌 ‘몸통뿐인 새’의 편에서 내내 시를 썼다는 것이다. 그곳은 상처, 어둠, ‘끝내 가담하지 않았던 그 망설임을 판독’하는 자리다.”
김요일 시인은 리산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문학동네)을 추천했다. 그는 “리산의 시는 망명정부의 여전사가 뿌린 삐라 같기도 하고 이집트 공주가 파피루스에 꼭꼭 눌러쓴 슬픈 연서 같기도 하다”고 평했다.
손택수 시인은 강성은의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을 추천했다. “강성은은 신화 속 세이렌의 후예다. 근대적 이성의 기획에 의해 추방된 세이렌의 노래는 잃어버린 꿈에 대한 판타지와 슬픔으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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