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의 네 번째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는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린 날카로운 손톱을 의식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7개의 단편을 묶은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열쇠말은 ‘엄마(모성)’다. 하지만 익숙한 모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의 소설 속 모성은 심각한 결핍과 일그러진 욕망들의 집합체와 다름없다.
재산을 탕진한 채 다 큰 싱글 딸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사사건건 딸의 일상에 간섭하며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엄마(‘남은 교육’), 국제아동구호단체 단장으로 전 세계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낳은 딸에겐 “네가 생각하는 건 뭐든 하지 마라”며 으르렁대는 엄마(‘감은 눈 뜬 눈’)가 대표적이다.
이런 뒤틀린 모녀 관계는 절친한 대학 후배의 습작을 표절한 유명 소설가 ‘언니’와 자신이 운영하는 문학 블로그를 이용해 그 언니를 나락으로 빠뜨려 복수를 하는 ‘나’의 관계(‘젓가락여자’)처럼 유사 모녀 관계에서도 변주된다.
‘나는 무언가 짓밟고 싶은 마음, 죄를 덮어씌우고 싶은 마음, 능욕하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마음이 낳고 키운 짐승이다. 나는 딸꾹질처럼 발작적으로 격렬하게 튀어나오기도 하고, 습관이나 취향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존재하기도 한다.’(215쪽)
출생과 함께 시작되는 최초의 인간 관계이자 가장 친밀한 관계인 모녀 사이의 민낯이 애정이나 책임감이 아닌 무관심과 증오, 때론 폭력에 기대 있을 수도 있다는 작가의 지적은 읽는 이에게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 ‘부재 중’이거나 경제적 도덕적으로 무책임하게 그려지는 ‘아버지’란 존재로 인해 사태는 봉합이 불가능한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차라리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의 관계 맺기가 더 온기 있게 느껴질 정도다.(‘스물세 개의 눈동자’)
서글픈 사실은 이런 엄마의 모습을 어느새 내가 고스란히 닮았음을 인생이라는 거울 속에서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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