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 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이 문장을 읽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도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이 문장은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의 주저인 ‘에티카’ 첫 문장이다.
‘에티카’는 질 들뢰즈와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탈근대 철학자의 사랑을 담뿍 받는 책.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1596∼1650)의 이분법적 사유를 무너뜨린 탈근대 철학의 전범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막상 ‘에티카’를 읽으려면 엄청난 난관에 봉착한다.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라는 원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정의와 공리, 정리 같은 추상적 수학 논리에 입각해 신과 정신, 감정, 자유의 문제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난감한 이들을 위한 대중적 개론서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비참할 땐 스피노자’(자음과모음)와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오월의봄).
‘비참할 땐 스피노자’는 재즈 피아니스트로도 활약하는 프랑스 철학자 발타자르 토마스가 쓴 책이다. 스피노자 연구로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지영 씨가 번역했다. ‘에티카’는 원래 신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를 맨 뒤로 돌리고 현대인이 익숙한 정서(감정)의 문제를 다룬 3, 4부를 먼저 소개하는 식으로 원작을 재구성하고 쉽게 풀어썼다. 그 핵심은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에 앞서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불변의 기쁨과 영원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은 서울대 국문과 박사 출신 이수영 씨의 노작이다. 그는 에티카의 핵심 내용과 개념을 다양한 비유와 사례를 들어 풀어낸다. 특히 딱딱한 철학서를 드라마틱한 스피노자의 감동적 삶과 병행해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스피노자는 부유한 네덜란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급진적 사상 때문에 스물넷 나이에 유대인공동체에서 파문당했다. 이로 인해 평생 렌즈 세공 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스피노자가 ‘야만의 극치’라고 규정했던 인간사회의 문제점을 치유하기 위해 15년간에 걸쳐 쓴 책이 바로 ‘에티카’라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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