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있는 놀이공원에 온 것 같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가 알록달록한 색채의 회화와 조각, 풍선과 커튼에 담겨 있다. 한데 자세히 보면 흠칫 놀란다. 조각상 얼굴은 귀여운 소녀인데 터질 듯 풍만한 가슴에 민망한 노출 패션이다. 3가지 색 캔버스를 채운 문양은 해골이다. 경쾌하면서도 섬뜩하다.
서울 중구 태평로 플라토미술관에서 4일 개막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전에는 일본 특유의 기괴함과 귀여움의 정서가 뒤엉켜있다. ‘아시아 팝아트’로 서구 미술계에 당당히 존재감을 과시한 무라카미 다카시 씨(51)의 미니 회고전으로 ‘미스터 도브’ ‘미스 코코’ 등 대표적 캐릭터와 꽃을 테마로 한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39점을 선보였다. 안소연 부관장은 “비서구권에서 예외적으로 정상의 위치에 선 작가”라며 “슈퍼플랫이란 개념으로 펼친 독특한 평면성, 만화적 상상력, 노골적 성의식을 세계 미술에 대응할 무기로 삼았다”고 소개했다.
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그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오타쿠로 상징되는 하위문화의 특징을 전통미술과 결합하는 동시에 동양과 서양, 고급과 저급 문화를 가로지른 명민한 선택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했다. 2002년 고가품 브랜드 루이뷔통과의 협업으로 유명해졌고 2008년 소더비 경매에서 ‘마이 론섬 카우보이’란 조각이 약 1500만 달러(170억 원)에 팔리면서 스타작가로 등극했다. 예술을 기업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예술기업론’을 펼친 작가답게 직원 150명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아트 상품의 생산과 판매, 갤러리 운영, 신진작가 프로모션, 영화 제작도 한다.
전시 개막에 맞춰 내한한 그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단계 성공일 뿐. 성공은 신기루와 같아서 도달했다 싶으면 저 멀리 가버린다”며 “나 스스로의 만족도는 10% 정도”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개인 간의 본질적 부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며 “가상현실을 거쳐 SNS로 대표되는 소셜 리얼리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절망과 외로움, 치유에 대한 욕망을 다루고 싶다”고 밝혔다. 12월 8일까지. 4000∼5000원. 1577-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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