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브랜드 이름을 가진 회사를 만났다. 지난주 A style에 소개됐던 바이어스도르프 코리아라는 업체다. 이달부터 ‘니베아 서울’이라는 익숙한 이름 대신 독일 본사의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한다.
기자는 회사 대표에게 “새로운 회사명이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도 않고, 발음하기도 어렵다는 걸 알고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독일에서 온 슈테판 에른스트 대표는 뜻밖에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제적으로도 회사명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원래 기업 이름을 쓸 것”이라며 “브랜드는 곧 정체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화장품 브랜드들도 이름에 정체성을 담고 있다.
최근 국내 시장에 선보인 미국 스킨케어 브랜드 ‘FAB(First Aid Beauty)’는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낸다. 이 브랜드명을 우리말로 옮기면 ‘응급처치 미용제품’ 정도가 된다. 자극적이지 않고, 민감한 피부에 가장 먼저 도움을 주는 스킨케어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응급처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브랜드명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다. ‘시세이도’는 1872년부터 시작된 브랜드 전통을 브랜드 이름에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시세이도란 회사의 모태가 됐던 일본 최초의 서양식 조제 약국 ‘자생당(資生堂)’을 음독(音讀)한 것이다. ‘자생’이라는 한자에도 깊은 뜻이 있다. 중국 고전인 역경의 한 구절에서 따온 이 이름은 ‘자연에서 원료를 찾는다’는 시세이도의 원칙을 상징한다.
‘DHC’는 다소 독특한 경우다. 사실 DHC는 1972년 위탁 번역 업무와 출판 사업으로 시작한 회사다. 당시의 이름은 ‘대학 번역 센터’였다. 1990년대 말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며 옛 이름을 그대로 쓰지는 않지만 기업 전통을 위해 본래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이니셜을 그대로 사용해 오고 있다.
원료 생산지를 브랜드 이름으로 그대로 옮겨오기도 한다.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화장품들이 쓰는 전략이다. 프로방스 지역의 로즈메리로 만든 에센셜 오일로 시작한 브랜드 ‘록시탄(록시땅)’이 대표적이다. 록시탄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프로방스 등 프랑스 남부(옥시타니)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온천수 미스트로 잘 알려진 ‘아벤(아벤느)’도 1975년 프랑스의 피에르 파브르가 같은 이름의 온천을 인수한 뒤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피부 진정 작용, 아토피 치료 등으로 유명한 온천의 명성을 그대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이들 회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브랜드 이름이 모두 자국어라는 점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일본의 남성 화장품 브랜드 ‘우르·오스’는 ‘촉촉하다’는 뜻의 일본어 우루오스(うるおす)를 그대로 브랜드명으로 삼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브랜드 중 순우리말로 된 것이 쉽게 떠오르진 않는다. 소망화장품의 ‘오늘’ ‘다나한’ 정도일까.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최근 중국에서 한국 제품이 인기를 끌며 한국어를 브랜드명에 사용한 제품이 대접받는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리가 복잡한 유럽 브랜드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우리 화장품 브랜드를 보며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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