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면벽수행하다 뭔가 봤다면… ‘죄수 시네마’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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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올리버 색스 지음·김한영 옮김/384쪽·1만7500원/알마

미국 컬럼비아대 신경정신과 교수인 저자는 환자 돌보고 책 쓰는 일 말곤 하는 게 없나 싶게 많은 책을 생산한다. ‘화성의 인류학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책만 헤아려도 12권이나 된다. 아직도 더 들려줄 얘기가 남았을까. ‘환각’은 이 질문에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책이다.

저자가 줄기차게 써온 책들이 전하려는 바는 의외로 간명하다. 이해하기 힘든 여러 정신적 증상들을 쉽게 ‘미쳤다’ ‘정신병자다’ 같은 말로 재단하지 말라는 거다. 일반인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몰라도 의학적으로 따져보면 다 이유가 있다. 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그 오해와 무지로 인한 간극을 해소함으로써 독자들이 좀더 신경학적인 고통(혹은 체험)을 당하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부탁한다.

환각 역시 마찬가지다. 눈앞에 헛것을 본다고 일단 비정상으로 보는 선입견부터 없애야 한다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보자. 수도승이 홀로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하거나 수감자가 독방에 오래 갇혀 있으면 기묘한 무늬나 사람 비슷한 형체를 보는 경우가 잦다. 종교나 문화계에선 달리 해석하겠지만, 의학적으로는 이를 ‘죄수의 시네마’라고 한다.

왜 이런 환각이 보이는 걸까. 이는 인간이 동일한 외부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 ‘감각 박탈’이 이뤄져 뇌의 인지능력에 혼선이 오는 것이다. 실제로 엇비슷한 풍경을 지속적으로 보는 철인3종경기 선수들도 레이스를 벌어다 종종 겪는 일이다. 그들이 다 비정상일까. 오히려 뇌를 비롯한 신체가 평정을 되찾기 위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봐야 한다.

확실히 올리버 색스는 ‘기본’은 하는 저자다. 풍부한 사례와 유려한 문장력으로 책에 감칠맛을 낼 줄 안다. 과학책 저자들이 다들 이렇게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국내에 소개된 시기를 기준으로, 2010년 이전에 나온 ‘색맹의 섬’ 같은 전작들에 비해 최근 책들은 살짝 ‘꼰대’ 냄새가 난다. 적절한 균형감이 돋보이던 관찰자적 시선이 매력이었는데, 요즘은 살짝 가르치려 든다고나 할까. 세월 탓이겠으나 ‘앉아서’ 쓴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환각#선입견#감각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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