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쿵더쿵쿵더쿵 우리 장단이 들리는 것 같다. 어수룩한 호랑이가 영리한 토끼에게 번번이 골탕 먹는 이야기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판소리처럼 펼쳐진다.
욕심은 많은데 게으른 호랑이는 한 입도 안 되는 작은 짐승들만 잡아먹었다. 어느 날 호랑이와 딱 마주친 토끼. 호랑이가 잡아먹으려 하자 토끼는 반짝 꾀를 낸다. 화톳불에 구운 돌멩이를 떡이라고 속이고는, 떡을 찍어 먹을 꿀을 가져온다며 내뺀다. 혼자 남은 호랑이는 뜨거운 돌멩이를 떡인 줄 알고 입에 넣는다. ‘호랑이는 눈알이 뱅글뱅글, 눈물이 주르륵. 어이쿠나, 이빨은 와장창! 부러졌지 뭐야.’
호랑이의 수난은 이어진다. 물고기로 실컷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토끼에게 속아 꼬리가 얼어붙고, 참새로 한바탕 잔치를 벌이려다 불붙는 갈대밭에 갇히고 만다. 이쯤 되면 늘 토끼에게 당하기만 하는 호랑이가 측은해진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히 사용하고, 익살과 해학을 더해 우리네 리듬을 흥겹게 전한다.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한다.
반전 넘치는 드라마도 신명나지만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점토로 빚은 호랑이와 토끼다. 작가가 직접 조물조물 만든 점토 인형의 생생한 표정과 동작 덕분에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지만 어딘가 칠칠치 못해 보이는 호랑이의 표정, 고소해하는 미소를 살짝 감춘 깜찍한 토끼는 눈길을 잡아끈다.
부조로 만든 배경은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숲, 눈 덮인 겨울 강가, 푸른 하늘 아래 갈대밭까지 다채롭다.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새, 색색으로 칠한 돌멩이떡까지 눈여겨볼 구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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