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 시인의 작품을 매우 좋아합니다. 명징한 시어가 마치 맑은 종소리를 연상케 하더군요. 곧 노벨 문학상을 받을 거라고 봅니다. 현대소설 중에선 김영하 씨 작품을 즐겨 읽어요. ‘빛의 제국’을 영문 번역판으로 읽었는데 남파된 고정간첩이 처한 상황으로 남북관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설정이 좋더군요. 》
”존 트릿 예일대 교수(동아시아 언어·문학)는 미국 학계에서 몇 안 되는 근대 한국·일본 문학 연구자다. 1973년 연구차 처음 한국을 찾은 이래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이광수 장혁주 등 친일 논란이 있는 작가들에 대한 연구 성과를 엮어 ‘태양에 너무 가까웠던(Too Close to the Sun)’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있다. 태양은 스스로 ‘태양의 나라’로 부르는 일본을 가리킨다.
트릿 교수는 이광수의 초기 단편소설 ‘사랑인가(1909년)’를 ‘Maybe Love’란 제목으로 번역해 미국 학계에 소개한 이광수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5년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을 영어로 번역한 이광수의 손녀 이성희 씨(미국명 앤 리)와 교류하면서 이광수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고 했다. 그는 “‘사랑인가’가 당시 17세였던 이광수가 외국어(일본어)로 쓴 작품인 점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알 수 있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그는 근대 한국문학에서의 이광수의 막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그의 친일 행적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일전쟁 발발(1937년) 이후 일본은 (닮고 싶은) 문명국이 아닌 군국주의 국가로 변질됐습니다. 그럼에도 이광수는 이 시기 그 스스로 끌려 일본에 협력하기로 선택했죠. 일제의 강요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협력을 거부했어도 (당시 이광수의 위상을 감안하면) 목숨을 뺏기거나 위해를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그는 일본 문부성의 지원으로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활동한 일본 작가들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극단적 좌파에서 제국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일본 작가가 조선에서 활동했습니다. 조선인과 교류할 기회가 많다 보니 식민지 조선의 처지에 아무래도 동정적이었는데, 동시에 조선인과의 교류가 일본인 작가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작품성까지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해 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트릿 교수는 11일 경희사이버대에서 ‘하루키 작품 읽기’란 주제로 공개강연도 했다.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그는 미국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 전문가로 손꼽힌다. 최근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출간으로 한국에 불고 있는 하루키 열풍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일본 작가지만 하루키 작품에는 미국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주인공의 생활 방식은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이나 영화, 심지어 문체까지 매우 미국적이에요. 한국이나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이런 문화에 대한 익숙함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고 봐요. 물론 작가로서 하루키의 창의력과 엔터테이너 기질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수시로 한국을 찾다 보니 그는 한국 음식 애호가이기도 하다. “한국의 냉면, 특히 물냉면을 좋아해서 한국에 올 때마다 첫 식사는 냉면으로 합니다. 먹을 때마다 그 맛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2주 뒤면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그 전에 전주에 내려가 ‘원조’ 전주비빔밥도 맛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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