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4일 일요일 맑음. 오키나와 몬 아무르.
#66 옐로우 몬스터즈 ‘4월 16일’ (2011년)
내게 일본 오키나와는 늘 부옇고 희미한 섬이었다.
10년 전쯤 본 이와이 슌지 감독의 달콤쌉싸래한 청춘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때문이다. 주인공 유이치와 친구들이 신비로운 숲과 바닷가를 헤매는 중반부의 ‘오키나와 시퀀스’는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화면은 영국 밴드 큐어의 가장 긴 곡을 듣듯 몽환적이었고 극중에만 존재하는 가수 릴리 슈슈의 음악으로 난 그곳의 높은 습도를 추정했다.
11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국제공항 라운지를 빠져나오자마자 사우나에 들어선 듯했다. 덥고 습한 바람이 날 감싸 안고 말을 걸어왔다. ‘멘소레 오키나와(오키나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음 날 찾은 폐허가 된 교외의 회백색 성곽은 그걸 에워싼 푸른 바다와 숲 탓에 더욱 공허하고 넓어 보였다. 오키나와의 상처는 원자폭탄을 떠안은 히로시마보다 깊고 빨갛게 보였다. 중개무역을 하며 평화롭게 살던 이곳은 힘센 외세의 침략을 여러 번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오키나와 시내 음반사 ‘캠퍼스레코드’를 지키는 비세 할아버지는 이 불행한 곳의 음악과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려고 먼지 쌓인 LP 레코드와 악기를 분주하게 찾아왔다.
13일 밤 현지 록 밴드 HY가 전통 북 연주자 28명과 리듬을 맞추며 관객과 함께 ‘워 어 어 어’ 하는 멜로디를 제창할 때 가사를 모르는 내 가슴도 저려왔다. 왜였을까. 페스티벌 관계자인 노리코 상은 뒤풀이 자리에서 한국 밴드 옐로우 몬스터즈(옐몬)가 부른 곡 ‘4월 16일’을 들으며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옐몬 멤버들은 각각 잘나가는 밴드(껌엑스, 마이앤트메리, 델리스파이스) 출신이다. 30대가 된 셋은 그 나름의 상처를 갖고 진짜 원하는 음악을 찾아 뒤늦게 의기투합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만든 노래 ‘4월 16일’을 그들은 늘 공연 마지막에 부른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지 않니?/아직 우린 늦지 않았어… 언제나 맨 뒤에서 가고 있는 건 우리가 원했었던 거잖아… 기다리다 지쳐서 힘이 들 때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되돌아가. 되돌아가/잊지 못해. 빛에 싸인 나의 모습을/항상 그 순간을 기억해’
오키나와 사람들은 어쩌면 한국어 노랫말을 알아들은 걸까. 그 사람들의 가슴은.―오키나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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