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랑하니까 미운… 애정과 증오 그 경계에 선 남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0일 03시 00분


◇밤의 첼로/이응준 지음/174쪽·1만2000원/민음사

여섯 편의 연작 소설로 이뤄진 저자의 신작 ‘밤의 첼로’를 읽고 있자면 복잡한 퍼즐을 한 조각씩 맞춰가는 느낌이 든다. 파탄 직전 상태거나 이미 파탄 나버린 남녀의 사랑 얘기는 각각 완결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인물들이 다른 에피소드에 수시로 등장해 중요 인물이나 배경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자화상만 그리는 뇌종양에 걸린 화가인 나(‘낯선 감정의 모습’)는 혼혈소녀 보영이 입원한 병실에서 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환자 Y로 등장하고(‘유서를 쓰는 즐거움’), 보영은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지리산 펜션의 프런트 여직원으로 밝혀진다(‘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 Y가 보영에게 들려 준 군대시절 이야기 속 고문관 이병은 마지막 에피소드(‘버드나무 군락지’)의 주인공 안중각이다. 소설책 옆에 큰 종이를 펼쳐 놓고 점과 선으로 인물관계도를 그려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들 정도다. 인물들이 에피소드를 가로지르며 촘촘히 살을 맞대고 있는 구조는 작가도 밝히고 있다시피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적 세계관이 반영됐다.

신작에서는 인물 대부분이 사랑으로 인한 지독한 혼돈과 어둠 속에 잠겨있다. 애정과 증오가 실은 경계 짓기 어려운 동시적인 감정이라는 작가의 통찰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자 오직 고통으로 이어져 있는 인간관계를 상징한다. ‘사람에게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율배반의 양가감정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오래 미워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37쪽)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한 이후의 혼란상을 그린 ‘국가의 사생활’이나 각각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에 속해 있는 남녀 국회의원의 사랑을 소재로 한 ‘내 연애의 모든 것’처럼 대중성 높은 전작을 써 온 작가답게 신작의 책장은 빨리 넘어간다. 이야기 중심의 통속적 연애소설로 읽는 재미도 충분하지만, 각 단편에 녹아 있는 철학적, 종교적 사유를 길어내 작가가 궁리하고 있는 세계와 사랑, 신과 인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밤의 첼로#남녀의 사랑#애정#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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