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와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먹먹한 얘기를 들이대는 책이다. 다섯 편의 단편이 연작으로 엮인 이 소설의 배경은 일본 도쿄 인근의 한 소도시. ‘벚나무 언덕(사쿠라가오카)’이란 멋진 이름과 달리 이곳에선 아동 학대와 은폐가 수시로 벌어진다.
작가는 아동 학대를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역설적으로 죄의식 없이 자행되는 학대의 잔인함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낸다. 독자의 눈물보를 무너뜨리는 것은 이런 학대를 온몸으로 받아낸 아이들에게 깊이 새겨진 상처들이다.
끼니조차 챙겨주지 않는 새 아빠에게 수시로 맞으면서도 “내가 나쁜 애라서 아버지가 화를 내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간다(‘산타가 오지 않는 집’), 잠이 들어야 엄마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밤이 오기만을 기다라는 나(‘엄마를 버리다’), 자신과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에게 버림받기 싫어 일부러 게임을 져 주는 다이짱(‘거짓말쟁이’)처럼 또래가 누릴 응석과 투정을 너무도 일찍 잃어버린 어른스러움이 눈물겹다.
이 소설은 학대의 주체인 부모의 엇나간 심리 또한 놓치지 않는다. 유년기 엄마에게 받은 학대를 딸 아야네에게 고스란히 반복하는 나의 독백(‘웃음 가면, 좋은 엄마 가면’)은 우리 마음속 탁한 웅덩이를 소스라칠 정도로 생생히 묘사한다.
“매사에 서툴러도 때리는 거라면 잘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도망가면 오른손으로, 왼쪽으로 도망가면 왼손으로 때린다. 하지만 요즘 아야네는 도망가지 않는다. 가만히 한 자리에서 때리는 대로 맞는다. 체념한 것이다. 나도 그랬다. … 귀를 기울이면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된다. 그게 전부다.”(118쪽)
일본 작가가 쓴 작품이지만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설득력을 갖췄다. 다만 아동 학대를 이른바 결손가정만의 일로 한정하는 설정은 편견을 조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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