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홀로코스트는 현대성의 불가피한 산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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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성과 홀로코스트/지그문트 바우만 지음/정일준 옮김/415쪽·3만5000원/새물결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혹시 광기에 찬 사악한 살인자들(나치)이 무력한 희생양들(유대인)을 도륙한 이례적 재앙으로 치부되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문명사회라는 신체에 자란 암종(癌腫)처럼 부주의하게 방치하면 언제든 다시 현대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병리학적 질병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성 또는 탈현대성의 문제를 천착해 온 폴란드 출신 유대인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88)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이 책(1989년 초판 발행)은 이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 사건을 유대인만의 특수한 비극으로 응축시킴으로써 현대 유대인들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로 이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나치가 학살한 2000만 명 중 홀로코스트로 학살된 유대인 600만 명만 부각시키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을 은폐, 왜곡하는 효과만 낳는다는 것이다.

가해자인 독일인에 초점을 맞춰 이를 특별 관리해야 할 질병으로 취급을 하는 것도 이 사건을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시간에 위생적으로 봉인하는 결과만 초래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 끔찍한 사건의 희생자들을 감동적 TV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소비할 수 있는 도덕적 심리적 거리감을 얻게 된다. 하지만 해나 아렌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그 생지옥을 겪은 사람들이 인간성의 일부를 상실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저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런 기억방식을 과거의 역사를 담아놓은 벽화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더이상 벽화로서의 홀로코스트가 아니라 오늘과 미래로 열려 있는 창문으로서의 홀로코스트를 바라보자고 말한다. 거기엔 홀로코스트가 ‘현대성의 실패작’이 아니라 ‘현대성의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도발적 주장이 녹아 있다. ‘국가폭력’ ‘자발적 복종’ ‘합리성’이라는 현대성의 세 특징을 축으로 삼아 그 ‘어둠의 핵심’으로서 홀로코스트를 파고든 이 책은 국가권력에 의해 생존권 자체가 배제된 존재를 통해 국가이성을 비판한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와도 공명한다. 이번 번역은 2000년 판본을 토대로 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국가폭력#자발적 복종#합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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