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랑 죽이 맞는 신을 찾아… 지구촌 ‘종교 쇼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0일 03시 00분


도교-불교에서 UFO신봉교까지… NYT기자 출신의 유쾌한 신앙탐구
◇신을 찾아 떠난 여행/에릭 와이너 지음/김승욱 옮김/460쪽·1만4500원/웅진지식하우스

저자는 신과 종교를 ‘음식과 메뉴판’의 관계에 빗대 설명한다. “메뉴판과 종교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준다. 누군가 메뉴를 추천할 수 있지만, 결정을 내리는 건 우리다. 종교를 믿는다고 신을 안다고 하는 건, 메뉴판을 읽었다고 식사를 잘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진에서 맨 아래 웨인(Wayne)은 저자에게 불교식 명상을 가르쳐준 전문가의 이름이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저자는 신과 종교를 ‘음식과 메뉴판’의 관계에 빗대 설명한다. “메뉴판과 종교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준다. 누군가 메뉴를 추천할 수 있지만, 결정을 내리는 건 우리다. 종교를 믿는다고 신을 안다고 하는 건, 메뉴판을 읽었다고 식사를 잘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진에서 맨 아래 웨인(Wayne)은 저자에게 불교식 명상을 가르쳐준 전문가의 이름이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세상에 복잡한 게 한둘이 아니지만, 종교는 그중에도 참 민감한 주제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본질적 문제부터 어떤 교리를 따르는지, 타 종교는 인정하는지 여러 갈래로 의견이 나뉜다. 굳이 형이상학적일 필요도 없다. 종교로 인해 눈앞에서 숱한 현실적 갈등이 벌어진다. 크게는 잦은 테러와 인명 살상, 가깝게는 종교가 연애나 결혼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까지…. 차라리 서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모른 척 덮어두는 게 나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다. 그럴수록 세상에 널린 많은 종교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믿었다. 출발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우연히 응급실에 실려 간 날, 한 간호사가 그에게 넌지시 묻는다. “아직 당신의 신을 만나지 못했나요?” 뭐야, 신을 만나면 특진 혜택이라도 주나? 별 뜻 없이 던졌을 수도 있는 그 말이 두고두고 파문을 일으킨다. 좋다. 그렇다면 신을 만나러 가보자. 이름하야 ‘종교 쇼핑’에 나선다.

물론 쇼핑이라는 말에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굳이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서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종교 얘기만 나오면 왜 그리 이마에 온통 주름을 잡고 심각해져야 하는 건가. 좀 편하게 관광하듯 둘러보자. 나랑 죽이 맞는 신은 지구 반대편까지 가야 조우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저자는 배낭을 둘러메고 세상의 종교를 여행한다.

전작 ‘행복의 지도’에서 이미 보여줬듯이 저자는 유쾌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NPR(공영라디오방송) 기자 출신인 그는 맛깔 나게 ‘글의 성찬’을 차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정작 본인은 우울증에 시달린다지만, 그래서인지 시니컬한 농담에 일가견이 있다. 위카(마녀처럼 주술을 믿는 종교)에서 다양한 신들이 인간의 노력과 상황에 맞춰 힘을 써준다는 생각을 ‘연동식 퇴직연금의 종교적 변종’이라고 부르거나 이슬람 신비주의 분파인 수피즘 전도사의 화려한 몸짓에서 명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을 떠올리는 장면은 이런 유형의 책에 일가견이 있는 빌 브라이슨을 연상시킨다.

브라이슨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매력은 저자가 결코 책상머리에 뭉개고 앉아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교를 탐구하기로 마음먹으면 일단 떠난다. 도교를 배우러 중국에 가고, 불교가 궁금하면 네팔을 찾는다. 관련 서적을 한 보따리씩 바리바리 짊어지고 다니지만, 가장 중시하는 것은 현장 체험이다. 우리 눈엔 사이비로 보이는 UFO신봉교인 ‘라엘 교’(미국에선 정식으로 인정받았다!)도 그들의 종교행사에 뛰어 들어가 직접 겪어 본다.

그 속에서 아무리 자기와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저자는 장점을 찾아내려 애쓴다.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지만 불교의 자비가 가진 미덕이나 ‘삶은 고통’이라는 세계관에는 공감할 수 있다.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게 뭔지 확실히 모른다”는 뜻에서 자신을 ‘혼란주의자’라고 부르는 저자는 확신하지 않으니 섣부른 예단도 하질 않는다. 오죽하면 마녀를 자처하는 이와도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고, 샤먼(무당)에게서도 배울 점을 발견하겠는가. 그건 저자의 열린 자세가 발휘하는 소중한 미덕이다.

이렇게 장점이 많기에 이 책의 결론은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본인은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유대인인 저자가 결국 마음이 기운 쪽은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의 분파인 카빌라였다. 유대교가 나름 매력적인 구석이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체험하며 보여주던 날카로운 통찰력이 모태신앙 앞에서 둔탁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게다가 불교나 도교 같은 동양종교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아이 쇼핑’에 머무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저자가 애용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 재밌다. 글을 읽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한다. 잠자리에서 책을 펼쳤다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하며 깜짝 놀라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신을 찾아 떠난 여행#종교#신앙#에릭 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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