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태형(28·사진)은 담백하다. 과장하거나 쇼맨십으로 포장하는 일이 좀처럼 없고 걸음걸음이 신중하다. 질문을 던지면 곰곰이 생각한 뒤 답하고 때로는 “저의 독주회에서 어떤 레퍼토리를 듣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
4월 교향악축제에서 대전시향(지휘 금노상)과 라흐마니노프 3번을 협연하기 전 그가 그랬다. “라흐마니노프는 5, 6년간 잘 연주하지 않던 작곡가였어요. 그의 곡이 가벼운 슬픔으로 연주되는 것이 싫어 조금 기다려왔어요. 러시아에서 공부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또 그동안 성장했다고 자부해서 이제는 연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라흐마니노프는 어느 누구의 연주와도 다르고 설득력이 있었다. 독일 뮌헨을 떠나 러시아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겪은 시간은 외롭고 험난했지만 그에게 러시아의 정서와 자신감을 선사한 듯했다. 그는 6월 러시아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뮌헨으로 돌아갔다. 올가을부터는 뮌헨 국립음대에서 실내악 과정을 시작한다.
훌쩍 성장한 그를 올여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26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에서 열리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8월에는 15일 임진각 연주회, 17일 ‘피스 앤 피아노 페스티벌’ 오프닝 콘서트, 21일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가 예정돼 있다.
코리안 심포니와 협연하는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 성남아트센터에서 최수열이 이끄는 강남 심포니와 호흡을 맞추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그가 무대에서 처음 도전하는 곡이다. 멘델스존은 신나서 소리 지르는 서커스 같은 재미를 주고, 슈만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피스 앤 피아노 페스티벌’에서는 그가 갈고 닦은 러시아 레퍼토리,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준다. “차이콥스키는 2008년에 연주하고는 일부러 아껴뒀어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차이콥스키 색깔과는 다른, 내 색깔을 그리고 싶어서요. 무대에서 나 자신에게 떳떳할 만큼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색깔이 분명하게 보여요.”
김태형은 3월 영국 헤이스팅스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상과 청중상을 받았다.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널리 알리진 않았다. 이미 하마마츠, 롱티보, 퀸엘리자베스에서 입상한 그가 ‘조용히’ 콩쿠르에 도전한 것은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인 영국 무대를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결실이 생겼다. 11월 영국에서 콩쿠르 결선에서 협연한 로열필과의 연주가 잡힌 것.
“스승인 엘리소 비르살라체 선생님은 ‘예술가는 평생에 걸쳐 해야 하는 작업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피아노 잘 치는 연주자가 되기도 힘들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는 잘 치는 것을 또 한 번 뛰어넘는 사람이잖아요. 관객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연주를 하는 아티스트가 꿈인데, 어휴, 말은 쉽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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