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과장 없는 담백한 연기… 긴장감 팽팽 생기 촉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5일 03시 00분


8월의 축제 ★★★

신혼 때 아내를 잃은 영민(가운데)은 낚시터에서 수목원 신입직원 유리(왼쪽)와 가까워진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신혼 때 아내를 잃은 영민(가운데)은 낚시터에서 수목원 신입직원 유리(왼쪽)와 가까워진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사람과의 관계가 종료됐을 때 그 사람에 대한 마음과 기억도 동시에 깔끔히 종료된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마음과 기억을 차분하게 재빨리 정리하지 못하는 삶은 쉽사리 궁상맞아진다.

산골 한적한 집에 두 남자가 함께 산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다. 장인과 사위. 한 남자의 딸이자 또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주영은 스물아홉 신혼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을 잊지 못한 아버지는 날마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딸의 유령과 남몰래 대화를 나눈다. 아내를 잊지 못한 남편은 비워내지 못한 그리움을 장인에 대한 효도로 쏟아낸다.

궁상맞기 그지없는 홀아비들의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관객 눈에도 보이는 주영의 유령이다. 서울대 진화심리학 석사 출신의 고학력 신인배우 이시원(25)은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아버지 눈에만 보이는 유령’ 역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극 전반에 묘한 긴장감과 생기를 유지한다.

죽은 이의 혼백이 특정 등장인물 눈에만 보이는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설정은 바로 근처 공연장에서 공연 중인 ‘콜라소녀’와 흡사하다. 이야기와 연출의 완성도, 배우 전원의 원숙한 앙상블에서는 지난해 4월 이후 세 번째 앙코르 무대인 ‘콜라소녀’ 쪽이 물론 월등하다. 하지만 된장찌개와 메밀국수의 맛을 맞대놓고 비교할 수 없듯 ‘8월의 축제’에는 ‘콜라소녀’에 없는 청량감이 있다.

극단 목화 출신으로 1990년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배우 손병호가 8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작품. 사위 영민 역을 맡은 천성훈 등 배우들의 과장 없는 연기가 잘 어우러져 슬며시 종료된 관계에 대한 기억을 덩달아 더듬게 만든다. 어쩌면, 종료되지 않은 마음과 기억 덕분에 궁상맞게나마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윤택순 연출 이시원 작, 배상돈 김민기 윤영걸 김은혜 출연. 8월 11일까지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3관. 1만∼2만5000원. 02-764-7462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8월의 축제#딸 유령#아버지#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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