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기자의 영화와 영원히]영화속 이야기가 현실로… 그 예지력에 소름 돋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6일 03시 00분


23년 후 미국 디트로이트 모습을 예견한 영화 ‘로보캅2’. 동아일보DB
23년 후 미국 디트로이트 모습을 예견한 영화 ‘로보캅2’. 동아일보DB
요즘 영화의 예지력에 소름이 돋는 일이 자주 있다.

‘미래의 미국 디트로이트 시. 자동산 산업이 쇠퇴해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시 당국은 악덕 기업 OCP에 치안을 맡긴다. 시에서 돈을 못 받은 OCP가 경찰 임금을 삭감한다. 파업에 들어간 경찰은 범죄 신고를 해도 오지 않는다. 도시 전체는 슬럼가이고 범죄가 들끓는다.’

‘디트로이트 시가 빚더미에 허덕이다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경찰의 범죄 현장 출동 시간은 58분이나 된다. 시민의 3분의 1은 극빈층이다. 가로등의 40%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도심 곳곳엔 빈 건물 7만8000여 채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위의 풍경은 영화 ‘로보캅2’(1990년)의 내용이고, 아래는 얼마 전 동아일보에 실린 디트로이트 시의 파산 신청 기사다. 23년 전 영화가 예측한 미래는 현실이 됐다.

또 있다. ‘지난달 일본의 한 연구소가 쥐꼬리에서 채취한 혈액 한 방울로 유전적으로 동일한 쥐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뉴스에 기시감이 있다 했더니, 1998년 프랑스 장피에르 죄네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4’(1998년)에서 봤던 이야기다. 시리즈 3편에서 에일리언과 함께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어 죽은 여전사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과학자들은 피 한 방울로 간단히 복제한다.

예술가의 사회적 촉수는 예민하다. 정치인들이 민초들의 원성이 자자해야 마지못해 정책 대안을 내놓는 데 비해, 예술가는 시대의 아픔을 가장 먼저 느끼고 작품에 반영한다. 그리고 지금 해결하지 못한 것이 초래할 미래를 경고한다.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설국열차’는 지구 온난화를 막겠다며 화학 냉각물질 CW-7을 살포했다가 빙하기를 부른 인류의 무지몽매를 그린다.

1982년 한국 TV에서 처음 방영돼 센세이션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 핵무기보다 강력한 전자무기 때문에 인류의 절반이 죽고 육지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지구가 등장한다. 영화를 연출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 감독은 이후에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에서 과학 문명에 대한 맹신에 직격탄을 날린다.

미야자키 감독은 최근 과거 반성을 모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역사 감각의 부재에 질릴 뿐이다. 생각이 부족한 인간이 헌법 같은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다. 미래 예측은커녕 과거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이들은 영화에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기자는 26일 미야자키 감독을 만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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