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진화 논쟁의 몸통 흔든 깃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7일 03시 00분


“외피만 따지면 조류가 가장 진화”… 美생물학자의 깃털 미스터리 추적기
◇깃털 / 소어 핸슨 지음·하윤숙 옮김/400쪽·1만8000원·에이도스

깃털에 대한 인간의 오랜 욕망을 담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유화 ‘이카로스를 위한 탄식’. 비행에 대한 인간의 오랜 열망을 반영하는 이 비극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새는 날갯짓으로 인해 최대 20배까지 치솟는 체열을 식히기 위한 허파 외에도 공기주머니가 9개 존재해 전 지구상에서 비행이 가능하지만 포유류는 서늘한 기후조건에서도 박쥐의 경우처럼 최대 30분가량의 제한된 비행만 가능하다. 에이도스 제공
깃털에 대한 인간의 오랜 욕망을 담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유화 ‘이카로스를 위한 탄식’. 비행에 대한 인간의 오랜 열망을 반영하는 이 비극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새는 날갯짓으로 인해 최대 20배까지 치솟는 체열을 식히기 위한 허파 외에도 공기주머니가 9개 존재해 전 지구상에서 비행이 가능하지만 포유류는 서늘한 기후조건에서도 박쥐의 경우처럼 최대 30분가량의 제한된 비행만 가능하다. 에이도스 제공
책의 향기 팀 회의시간에 이 책을 추천하는 기자가 많았다. 그러자 한 기자가 의문을 제기했다. “너무 가벼운 주제를 마니아처럼 파고든 책은 아닐까요?”

아마도 ‘깃털’ 하면 떠오르는 ‘가벼움’을 의식한 발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 책의 집필에 착수한 저자의 탄식만큼 적절한 응수도 없을 것이다. “가능한 한 주제 범위가 나를 거의 압도할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깃털은 결코 한가한 주제도, 사소한 주제도 아니다.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은 그 외피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된다. 미끈거리는 양서류, 비늘로 덮인 어류나 파충류, 털이 있는 포유동물, 그리고 깃털로 덮인 조류다. 이들 네 종류의 외피 중에서 모양과 기능의 다양성에 있어서 깃털은 다른 셋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깃털은 인간이 동경해마지 않던 멋진 비행을 가능하게 해주고, 남극의 살인적 추위를 이기는 보온효과를 발휘하며, 날갯짓할 때 평소보다 7∼20배 많이 발생하는 체열도 식혀준다. 또 방수효과는 고어텍스를 능가한다. 화려함도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서양인들의 눈과 가슴을 사로잡은 극락조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깃털의 아름다움에서 나온다. 깃털 길이가 50cm에 이르는 기드림풍조의 뒷머리 깃털이나 바이올린 연주소리를 내는 곤봉날개마나킨의 깃털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아름다움을 훔치기 위한 인간의 깃털장식을 다룬 분량만 50쪽이 넘는다.

무엇보다도 ‘깃털의 탄생’은 진화학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새의 시조로 불리는 그 유명한 시조새의 화석은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이 발표되고 2년 뒤 독일 바이에른 졸른호펜 화석층에서 발굴됐는데 영국박물관은 이를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의 거금을 들여 매입했다. 요즘 시조새 화석의 가격이 150만 달러를 웃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옳은 투자였지만 당시 영국 박물관 이사회는 구입을 주도한 리처드 오언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보면 오언은 다윈의 진화론 신봉자여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공룡’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당대 최고의 고생물학자로 존경 받았던 오언은 신의 손에 의해서만 종이 창조되고 변화된다는 창조론자였다. 그가 시조새 화석을 입수한 진짜 이유는 훗날 ‘생물학의 로제타석’이라 불리게 될 이 증거가 진화론자들의 수중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공룡과 새의 특징을 함께 갖춘 시조새야말로 파충류에서 조류가 진화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언은 이 화석을 감춰두고 홀로 연구를 수행하고 3개월 뒤 영국왕립학회에서 “시조새는 완전한 형태를 갖춘 새로서 최초로 알려진 사례”라며 “파충류의 특징은 우연하게 생긴 것일 뿐”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를 유야무야하려 했다. 하지만 그 강연회에 참석했던 그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던 토머스 헉슬리는 그 뒤 몇 년에 걸쳐 칼을 간 끝에 오언이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치명타를 가했다.

헉슬리는 졸른호펜 화석층에서 깃털만 빼면 시조새와 똑같은 작은 공룡 콤프소그나투스 롱지페스를 찾아낸 동시에 오언 연구의 오류를 조목조목 짚어내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오언 교수는 자신의 왼발과 오른발을 분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시조새 논쟁에서 진화론이 명백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과연 깃털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느냐는 150년간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비늘이 깃털로 변했을 것이란 가설이 우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996년부터 중국 랴오닝 성의 이시안 지층에서 깃털 달린 공룡화석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별도의 발생구조를 지닌 깃털이 처음엔 장식과 보온을 위해 생성됐다가 비행 기능까지 갖췄을 것이란 리처드 프룸 예일대 교수의 가설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현장 생물학자인 저자는 작은 새의 깃털을 직접 해체해보거나 관련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하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깃털에 얽힌 과학사적 에피소드도 인물 중심으로 마치 한 편의 드라마나 콩트를 보여주듯 흥미 진진하게 재구성한다. 다만 관련 사진이 흑백사진이다 보니 새나 깃털의 아름다움이 생생히 전달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2013년 존 버로스 메달 등 영미권 과학기술 분야 최우수 저술상을 다수 수상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진화#깃털#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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