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나에게서 온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일 03시 00분


소심한 라셸과 천방지축 발레리가 만났다

프랑스 영화 ‘나에게서 온 편지’의 아역배우 아나 르마르샹(왼쪽)과 쥘리에트 공베르. 프리비전 제공
프랑스 영화 ‘나에게서 온 편지’의 아역배우 아나 르마르샹(왼쪽)과 쥘리에트 공베르. 프리비전 제공
때는 1981년 프랑스. 라셸(쥘리에트 공베르)은 소심한 아홉 살 소녀다. 개학 전날 밤 학교에 늦을까봐 가방을 메고 자고, 빨간 신호에는 길을 건너는 법이 없다. 이런 라셸에게 새로운 자극이 생겼다. 새 짝꿍 발레리(아나 르마르샹)는 천방지축인 소녀. 라셸에게 시험 답안지를 몰래 바꾸자고 하고, 담임선생님의 데이트를 미행한다. 라셸에게 발레리는 신천지다.

라셸 가족은 사연이 기구하다. 아빠(드니 포달리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출해 살아남은 유대인. 엄마(아녜스 자우이)는 튀니지에서 전쟁을 겪었고, 라셸과 한방을 쓰는 할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손을 못 쓴다. 미모의 미혼모인 발레리의 엄마(이자벨 카레)까지 라셸의 가족과 친구가 된다. 아빠는 뚱뚱한 엄마 대신 발레리 엄마에게 자꾸 눈길을 준다.

8일 개봉하는 영화 ‘나에게서 온 편지’는 추억으로 가는 열차다. 열차에 오르면 어린 시절 첫 친구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만날 수 있다. 두 아이의 소꿉놀이 속에 덜 익은 시큼한 살구 맛의 인생이 담겨 있다. 두 아이 가족의 일상에서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인생의 희로애락과 마주할 수 있다.

두 아역배우의 발칙한 말과 행동에 장마철 눅눅해진 마음을 보송보송하게 달랠 수 있을 듯. 라셸은 발레리의 오빠를 “내 남자”라고 부르고, 발레리는 라셸의 아빠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인형으로 담임과 체육 교사가 화장실에서 벌인 섹스를 흉내 내는 대목에선 입에 문 팝콘을 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디션에서 600 대 1의 경쟁을 뚫은 아역배우들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깜찍한 연기가 매혹적이다.

2002년 단편 ‘예민한 시절’을 통해 대머리 엄마를 둔 소년의 고민을 담았던 프랑스 출신 카린 타르디외 감독의 작품. ‘우리 가족의 걱정은’(2003년) ‘헤드 오브 맘’(2007년) 등에서 가족 문제에 천착해온 감독이다. 12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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