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그림자 밟기’의 3만 부 판매 기원 홍보 스티커가 부착된 차량. 북스피어 제공
독자가 책 출판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대중 모금)에 동참하는 것을 뛰어넘어 직접 책 홍보와 판매에 나서는 ‘북 펀드 2.0’ 시대가 열렸다. 대형 출판사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은 출판사’의 차별화 전략이다.
장르문학 전문출판사 북스피어는 지난해 일본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안주’ 출간을 앞두고 북 펀드 5000만 원을 모아 화제가 됐다. 올해는 같은 작가의 소설 ‘그림자 밟기’ 북 펀드를 모집해 8000여만 원을 모았다.
지난해의 ‘북 펀드 1.0’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북스피어는 지난해 모인 5000만 원에 빌린 돈을 더해 광고비에 썼다. 인터넷과 라디오 광고로 책을 알렸지만 단발성 광고라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1년간 1만5000부 이상을 팔면 원금은 물론 투자액의 10%를 돌려주기로 했는데, 1만2000부가량을 팔아 원금만 돌려줬다.
올해는 방식을 바꿨다. 인터넷과 라디오 광고를 없애고 모금액을 종잣돈 삼아 투자자 102명이 직접 각종 홍보와 판매에 나선다.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은 차량 문짝 전체에 붙이는 대형 광고 스티커(개당 25만 원)를 투자자와 지인들의 차에 붙이는 것. 참여자가 차를 몰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입소문 광고 효과를 낸다. 여럿이 차를 몰고 전국투어도 떠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투자자에게 한 권씩 책을 공짜로 줬지만 올해는 이것도 없앴다. 책을 직접 사게 만들어 펀드 수익에 기여하도록 한 것. 투자자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책 증정 이벤트를 벌이고, 가게 주인들은 자신들 가게에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한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대형 출판사의 덤핑, 사재기, 선인세 경쟁 공세 앞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다 북 펀드를 생각했다”며 “지난해 시행착오를 거쳐 북 펀드 투자자가 직접 책 홍보에 나서도록 했다”고 말했다.
판매는 지난해보다 순조롭다. 지난달 19일 출간 후 3000부를 서점에 배포했는데 딱 열흘 만에 재주문이 들어와 현재 4000부가 팔려 나갔다. 지난해보다 25%가량 판매량이 늘었다. 11월까지 3만 부가 팔리면 펀드 수익을 배당한다.
모금 과정도 ‘작은 기적’이었다. 지난달 1일 마감 당일 아침까지 펀드 하한선인 7000만 원에 700만 원이 부족했다. 하지만 곧 펀드 성사 여부 문의 전화가 쇄도하더니 하루 만에 1710만 원이 모였다. 유학 가서 한 달 굶을 각오로 돈을 낸 유학 준비생이나 아내 몰래 형에게 300만 원을 빌려 낸 남자도 있었다.
“늘 헌책만 샀는데 처음으로 ‘그림자 밟기’ 새 책을 샀다. 출판사가 잘되는 걸 보면 덩달아 나도 잘되는 것 같다.”(강원 상서우체국장 조희봉 씨·43) “생활비 절반을 잘라 50만 원을 냈다. 3만 부가 팔리면 돈보다는 책 판매에 일조했단 생각에 뿌듯할 것 같다.”(주부 임민정 씨·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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