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트럼펫 연주자 파초 플로레스(32)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 레이블 도이체그라모폰(DG)과 최근 전속계약을 하고 첫 음반 ‘칸타르’를 냈다. DG가 트럼페터와 전속계약을 한 것은 프랑스 모리스 앙드레(1933∼2012)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네 형제가 복닥거리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 플로레스를 걸출한 연주자로 키운 것은 베네수엘라의 빈곤층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였다. 아시아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객원연주자로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1일 엘 시스테마가 꿈을 꾸게 해줬다고 했다.
“엘 시스테마에서 수많은 기회를 맞았고 그를 통해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엘 시스테마의 모토가 ‘연주하라, 그리고 싸워라’죠. 무기 대신 악기를 쥐여주는 것이죠. 빈곤과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음악이 희망을 줬습니다.”
인구 3000만 명인 베네수엘라에는 오케스트라가 400개가 넘는다. 어느 누구나 엘 시스테마에 참여할 수 있고 수업료와 악기를 지원받는다. 플로레스는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 그 모든 것을 엘 시스테마는 뛰어넘는다. 그것이 40여 년간 엘 시스테마가 건강하게 살아남은 비결”이라고 했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클래식 스타 구스타보 두다멜(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판 엘 시스테마를 내세운 음악교육 활동이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생겨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10년부터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꿈의 오케스트라’를 꾸렸고, 교육부는 2011년부터 학생 오케스트라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 꿈의 오케스트라에는 전국 17개 기관을 통해 979명이 참여하고, 학생 오케스트라 사업을 통해서는 초중고교 및 특수학교 100개에 새로 오케스트라가 생겼다.
해마다 강조되는 것은 숫자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다. 중학교 3학년인 장하나(가명)는 욕을 달고 살고 친구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거친 소녀였다.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참가해 트럼펫을 연주하면서 비로소 협업과 화음의 의미를 알게 됐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미래를 바라볼 때, 하나는 제2의 플로레스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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