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을 앞두고 출간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책하면 떠오를 고정관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읽다 보면 우리가 선뜻 떠올릴 통념을 무참하게 깨 버린다. 한마디로 위안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과 접근 방식이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울컥했다. ‘뭐야,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를 매춘부라고 매도하는 가해자 일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건가.’
저자가 그런 천박한 일본 우익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인권침해 범죄의 책임이 일본제국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의 복합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이 문제를 무조건 일본의 국가범죄와 배상으로 연결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영원한 볼모로 잡아 두는 짓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이라면 ‘아니 왜 우리가 오만한 가해자를 철저히 단죄하는 데 인색해야 하지?’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작 우리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은 외면하고 일본에 불리한 내용만 확대 재생산하는 기억의 조작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그래서 이해와 화해가 아니라 분노와 적대의 악순환만 초래하고 있다면?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와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라는 책을 쓴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게이오대와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일문학을 전공한 세종대 일문과 교수이다. 한마디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런 저자의 문제의식은 1990년 초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가 왜 2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는가에서 출발한다. 한국인들은 이를 일본의 우경화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한국인들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던 문제를 키워 놨고, 이로 인해 일본 우익뿐 아니라 이 문제에 죄의식을 느끼던 일반 일본인까지 염증을 일으키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나름의 사죄와 보상을 했다. 최근 그 존재가치가 새삼스레 부각되는 고노 담화(1993년)는 “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라고 인정하면서 “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다. 무라야마 내각은 한발 더 나가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조성해 위안부 1인당 200만 엔의 보상금과 총리의 사죄편지를 보내고 7억 엔 규모의 의료복지사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직접적 강제연행까지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 구조적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다. 또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자민당 의원이 세 배나 많은 국회에서 입법이 불가능해 민간참여를 앞세웠지만 사실상 정부 돈(10년간 1000억 엔)으로 기금을 마련했다. 우리말로는 보상금으로 번역된 ‘쓰구나이’란 표현은 죄를 씻는다는 속죄의 의미가 담겼다.
2003년까지 지속된 이 사업을 통해 필리핀 대만 한국의 위안부 285명이 보상금을 받았다. 한국에선 61명이 이를 수령했다(수령을 강력 거부한 위안부 할머니의 수와 비슷하다). 이 기금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전체 사업비의 90% 가까이가 일본 정부 국고에서 지출됐다.
문제는 한국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의 이런 속사정은 모른 채 ‘국회입법에 의한 국가배상’만 요구하면서 상황이 크게 꼬여 버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기에 위안부 문제를 과거 일본제국의 사과와 반성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익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삼는 일본 진보진영의 ‘냉전적 사고’가 더해지면서 일본 우익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악마’를 깨웠다는 것이다. 즉, 국민기금 설립에 반대하지 않던 자민당과 요미우리신문이 종전의 입장을 번복한 배경에는 일본인의 피로감과 반감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진짜 민감한 대목은 위안부들의 수많은 증언 중에 담겨 있는 ‘일본군의 잔학성에 균열을 가하는’ 증언들이다. 그들을 속여 전쟁터로 끌고 가 학대와 착취를 일삼은 주체는 대부분 동포인 조선인 민간업자였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는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 위안부와 달리 특별취급을 받았다.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이 패망의 순간까지 보호하려 한 ‘군수품’이었다면 다른 나라 여성은 마음대로 강간하고 죽여도 되는 ‘전리품’이었다.
우리 기억 속의 위안부는 ‘일본군 군홧발에 짓밟히는 가녀린 열다섯 소녀’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투쟁하는 투사’다. 일제가 14∼25세 여성 노동력 동원을 위해 여학생 중심으로 모집한 정신대와 혼동한 결과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이런 착종된 이미지가 일본에 대한 증오를 강화시키면서 정작 동족을 팔아먹은 우리의 죄를 눈감게 만든 것은 아니냐고.
저자의 이런 도발적 주장에 수긍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만 매섭게 노려봐 온 우리 자신의 모습도 한번쯤 거울에 비쳐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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