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이미 와 있다. 엄청난 분노와 좌절, 공포가 쌓이고 있다.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정치계급은 모든 합법성을 잃을 것이다. 한 달 아니면 1년 내에…. 새로운 혁명의 방아쇠가 당겨질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석학인 자크 아탈리(69)의 신작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프랑스의 응급상황(Urgences Fran¤aises)’이란 제목 그대로 현재의 프랑스는 단순한 위기를 넘어 이미 응급실에 실려 온 중환자다. 앞으로 1년 내에 개혁을 하지 못하면 그리스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다. 이 책은 요즘 프랑스에서 서점뿐 아니라 모노프리 같은 동네 할인점에서도 맨 앞에 꽂혀 있을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은 ‘행복했던 나라’ 프랑스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완벽한 기후조건, 세계 1위의 관광대국, 최상급 의료 교육 철도 시스템, 전 세계 2억2000만 명에게 통용되는 언어, 최고의 삶의 질 만족도…. 그러나 이런 ‘약속의 땅’ 프랑스가 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위기에 빠져 버린 것일까.
저자가 짚은 가장 중요한 몰락의 원인은 기득권과 특권에 대한 집착이다. 천혜의 풍요로운 조건이 역설적으로 사회적 이동성의 거부, 세계에 대한 불신, 개혁에 대한 공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 해안을 가졌다. 그러나 프랑스는 한 번도 해양국가나 상업 자본주의 국가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농업국가를 지향했다. 프랑스인들은 땅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바다 밖의 막대한 이익과 위험, 상업, 제조업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실제 프랑스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26%에서 2011년 12%로 줄었다. 제조업이 없으니 성장도, 고용도, 수출도 점점 줄어든다. 또 프랑스인의 60%는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서 평생 살아가며, 73%는 세계화를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안정된 제도에 의한 개혁은 ‘프랑스적 전통’이 아니다. 프랑스에선 오직 극단적인 ‘혁명’과 ‘반혁명’을 통해 역사가 움직여왔다”고 냉소를 보낸다. 그러나 비극적 결말을 막을 길은 역시 개혁뿐이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리는 언제나 낙관주의자의 몫”이라며 10가지 개혁과제를 제시한다.
여기엔 프랑스를 젊은 세대를 위한 나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사회 이동성 증대, 직업교육 강화, 기업 경쟁력 강화, 정치 개혁 같은 구체적이고 실용적 조언이 담겼다. 특히 실업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학교’를 통한 평생 일자리 구축 시스템이 눈여겨볼 만하다. 또 프랑스어와 문화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벗고 유럽과 세계의 인재를 적극 받아들이며 마음의 빗장을 열 것을 촉구했다.
저자는 프랑수아 미테랑부터 니콜라 사르코지까지 좌우 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책 자문에 응한 유명 학자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그의 비판과 대안 제시가 과연 프랑스를 바꿀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는 “만일 대통령이 철저하게 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재선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이번이 프랑스엔 마지막 기회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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